항목 ID | GC007007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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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學 |
영어음역 | Munhak |
영어의미역 | literatur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동윤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만들어진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개설]
제주시 문학을 살피기 위해서는 우선 제주도 근·현대문학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제주시의 문학은 제주도의 문학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도 따라야 한다.
제주 섬은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기에, 특히 문화활동에 관한 사항을 제주시만 따로 떼어내 논의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제주시 지역은 오랫동안 제주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제주시의 문학은 곧 제주도의 문학이라고 할 정도로 비중과 영향력이 크다. 결국 제주시의 문학은 제주도 근·현대 문학에 대해 짚어보는 가운데 논의될 수밖에 없다.
제주시 문학의 범위는 제주시 작가들의 문학이라는 큰 틀에 제주시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진 문학을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여기서 제주시 작가란, 제주시(읍)에서 태어나 제주시에 살고 있는 작가들, 제주시에서 태어나 유소년 시절 이상을 제주시에서 보내고 외지에 나아가 살고 있는 작가들, 외지에서 태어났지만 제주시에 정착해서 꽤 오랜 기일이 지나도록 살면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말한다.
[일제강점기 제주 문학]
첫 번째 시기는 20세기 벽두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로, 신학문을 습득한 일부 지식인들에 의해 문학 활동이 이루어지던 시기다. 1910년대 전반기까지는 제주인들에 의해 발표된 신문학 형식의 작품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김문준·김명식·강관순·김이옥·이영구·오본독언(吳本篤彦) 등 선구적 활동을 한 제주 출신 지식인들의 문학을 접할 수 있다.
김문준은 농촌 계몽의 내용을 담은 가사(歌辭)인 「농부가」(1915)를 썼고, 김명식은 1920년 『동아일보』 창간호에 시 「새 봄」과 「비는 노래」를 발표했는가 하면 「전쟁과 문학」(1938) 같은 문학평론 성격의 글도 썼다.
제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등단 절차를 밟은 시인 김지원은 『조선문단』과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1920년대에 25편의 시를 발표했다. 강관순의 「해녀의 노래」는 제주 공동체와 관련하여 관심을 끌었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의 개편에 참여하고 사회주의 문예운동을 전개한 고경흠의 활동도 주목된다.
1940년대 전반기의 경우 이시형의 「이여도」(1944), 오본독언의 「긍지」(1943)·「해녀」(1944), 이영구의 「밭당님」(1942) 등의 소설과, 김이옥의 「슬픈 해녀여」·「나의 노스탤지어」(미간행 시집 『흐르는 정서』에 수록) 등과 같은 시들이 전해지는데, 이는 모두 일본어로 발표된 작품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서울과 일본 등 외지에서 활동했기에 서로 어떤 구심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역성을 뚜렷하게 드러낸 경우도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제주 근대문학의 형성에 기여한 바 있다.
[전란기 제주 문학]
두 번째 시기는 1945~1969년, 즉 해방 이후 4·3과 한국전쟁이라는 큰 전란의 격변을 겪으면서 주로 동인을 중심으로 활동을 벌였던 기간에 해당된다. 제주 문학이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하며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4·3과 한국전쟁을 겪는 등 격변의 역사가 소용돌이쳤던 기간이다. 문학작품을 주로 다룬 종합 교양지가 나오기도 했고, 여러 동인들에 의해 동인지들이 속속 간행되었다. 문학단체가 발족되었으나 아직 활발한 활동을 벌이지는 못했다.
1940년대 후반 제주 문학계에서 주목을 끌 만한 내용은 잡지 『신생(新生)』(1946)을 간행한 것이다. 제주도 최초의 잡지인 『신생(新生)』은 종합 교양지였지만, 잡지 간행 주체에 문학인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잡지 구성에서도 문학작품의 비중이 절반을 넘었지만, 사실상 창간호가 종간호로 되어버린 잡지였다. 『신생(新生)』에 게재된 문학작품으로는 김이옥·최길두·이영구의 작품들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1950년대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계용묵 등 한반도의 역량 있는 문인들이 제주에 체류하면서 문학 열기가 다시 고조된 시기이다. 문학을 중심으로 편집된 종합 교양지 『신문화』(1952~53)가 3호까지 나왔으며, 『흑산호』(1953), 『비자림』(1958), 『문주란』(1959)으로 동인지 발간이 이어졌다.
제주도 최초의 문예지라고 할 수 있는 『시작업』(1959~1960)이 간행된 점도 주목할 사항이다. 제주도 최초의 문학단체인 ‘제주문학동호인회’가 1956년에 조직되었고, 1950년대의 막바지에는 김대현·김종원·양중해·최현식 등 중앙 문단에 진출하는 문인들도 나왔다.
1960년대는 대체로 1950년대의 분위기가 이어졌다. 중앙 문단에 진출하는 문인들이 늘었으며(김광협·김용길이 시인으로, 강금종·오성찬이 소설가로, 박철희·김영화·김시태가 평론가로 등단함), 『아열대』(1963) 등의 동인지도 나왔다.
1950년대의 제주문학동호인회가 ‘제주문학자협회’, ‘제주문학협회’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68년 한국문인협회로부터 지부 인준을 받았다. 그러나 조직적인 활동을 벌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산업화 시기 제주 문학]
세 번째 시기는 1970년대부터 급격히 이루어진 산업화 경향(감귤 농업의 성장과 관광 개발 활성화 등)과 정치적 상황 변화 등에 맞물리면서 제주 사회가 급격한 사회 변동을 체험하는 기간으로, 1970년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다. 따라서 이 시기는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제주 문학이 사회적으로 영역을 크게 확대해나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972년 한국문인협회 제주도지부가 재정비되고 제주문인협회 기관지 『제주문학』이 그 해 12월 창간되었다. 『제주문학』은 해마다 꾸준히 간행되면서 회원들의 창작물과 시의성 있는 기획물 등의 게재를 통해 제주 문학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시에 한기팔·김용해·문충성·오용수·강통원·문영종, 시조에 정인수·이용상, 소설에 현기영, 평론에 송상일·김병택이 등단하였다. 1970년대 후반에는 현기영의 4·3소설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1980년대는 제주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문학작품으로 형상화되고, 그 울림이 사회적으로 크게 증폭된 시기였다. 1970년대 후반기를 거쳐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4·3문학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에 이르렀으며, 현기영·현길언·오성찬 등 소설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허영선·강방영·김수열·김승립·나기철·고영기·김광렬·김순이·양영길 등이 시로, 오승철·김공천·정태무·이인식·오영호·고성기·고응삼·고정국·문태길 등이 시조로, 김진자·현길언·고시홍·고원정·오경훈·김길호·김석희·이석범·정순희·한림화 등이 소설로, 장일홍·강용준 등이 희곡으로 등단하였다.
1990년대는 제주 출신들의 문단 진출이 크게 늘었으며,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이 발표되었고, 문단 조직도 이원화된 시기였다. 1994년 문학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는 젊은 문인들을 중심으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주도지회(약칭 제주민예총) 문학위원회가 결성되어 『섬의 문학』을 3호까지 내고 ‘4·3문학제’를 치르기 시작하면서 제주 문단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1998년에는 제주민예총 문학위원회가 제주의 중견 문인들과 결집하여 민족 문학과 지역 문학의 활성화를 내세우며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약칭 제주작가회의)를 출범시키고, 반년간지 『제주작가』를 펴내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제주 문단은 제주문인협회와 제주작가회의를 두 축으로 재편되기에 이르렀다. 1999년에는 전국적인 시 전문 계간지를 표방한 『다층』도 창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