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744 |
---|---|
한자 | 舞踊 |
영어음역 | muyong |
영어의미역 | dance |
이칭/별칭 | 제주 무용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집필자 | 김순자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대에서 행해지는 인간의 육체로 사상·감정·감각·정서 등을 율동적으로 표출하는 행위 예술.
[개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연행되는 무용의 범주는 근대 이전에 연원을 둔 전통 무용과 근대 이후 전통 무용에 바탕을 두고 새롭게 전개된 신무용, 서양의 기법에 바탕을 둔 현대 무용 등이 주를 이루며, 이 밖에 우리나라의 대학 교육에서 수용하고 있는 발레 등을 함께 아우른다.
제주 무용은 무속과 민속을 토대로 발전해 왔으며, 현대 무용은 1950년대 송근우를 주축으로 한 학교 무용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1980년대 중반까지 계속된다. 1985년 제주시립민속예술단이 창설된 뒤에는 재단법인 제주도 민속예술단, 제주도 예술단으로 확대, 개편되면서 제주 무용은 한층 발전하게 된다. 1987년 제주무용협회가 발족되고, 1990년대에 들어 전문 무용가가 배출되면서 제주 무용은 장르와 내용면에서 다양화되고 있다.
[변천]
1. 1950~60년대
1950년대 제주 지역의 문화 예술은 학교 예술이 중심이었다. 학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활동은 1956년 10월 23일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약칭 문총) 제주지부’가 결성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제주지부는 문학, 미술, 연극, 무용, 한글학위원회 등 13개 위원회에 35개 분과 141명의 회원으로 발족되었다. 무용위원은 현대 무용, 고전 무용, 향토 무용 분과 등 3개 분과를 두었는데, 현대 무용 분과에 송근우가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5·16군사쿠데타 정권에 의해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가 해산되자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하던 예술 활동은 중단되었다. 1962년 4월 29일 ‘전국예술단체총연합 제주도지부’가 창립된 뒤 무용가협회는 1967년 예총 산하기관에 편입되어 송근우가 회장을 맡았다.
제주 무용은 무용가 송근우가 근무하던 제주여자중학교와 제주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을 주축으로 발전해 나간다. 제주여자중학교와 제주여자고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탐라무용연구소생’ 15명은 1964년 10월 29일 서울에서 열린 제5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처녀 출연해 무용극 「해녀놀이」로 장려상을 수상하였다. 또 제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도 「입춘굿놀이」(안무 송근우, 해설 안사인)로 장려상을 받았다.
이렇듯 제주여자중학교와 제주여자고등학교 무용부는 학교예술단 이상의 활동을 벌였다. 제주도를 대표해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였는가 하면 그들의 무용 실력은 곧 제주 무용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다.
무용 내용도 민속 무용(「콩쥐팥쥐」·「장고춤」), 고전 무용(「부채춤」·「항장무」), 발레(「암명」), 외국 민속 무용(스페인 댄싱), 신흥 무용(「유령」), 향토 무용(「멍석놀이」) 등으로 다채로웠다.
1964년과 1965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던 제주여자중학교와 제주여자고등학교 무용부는 1966년 제7회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세경놀이」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탔고, 1967년 제8회 대회에서는 「영감놀이」로 영예의 대통령상을 받았다. 또한 1968년 제9회 대회에서는 「영등굿놀이」로 국무총리상, 1969년 10회 대회에서는 「해녀놀이」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타기도 했다.
2. 1970년대
제주여자중학교와 제주여자고등학교 무용단의 활약은 197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1970년 11회 대회에서 「조리희」로 장려상, 1971년 12회 대회에선 「해녀놀이」로 장려상, 1972년 13회 대회에서는 「영등굿놀이」로 장려상, 1973년 14회 대회에선 「입춘굿놀이」로 장려상을 받는 등 수상 행진은 계속되었다.
1974년 제15회 대회부터는 제주여자중학교와 제주여자고등학교 학생들 대신 성산리 주민들로 구성된 민간 단체가 「달구 소리」와 「톱질놀이」를 가지고 제주 대표로 출연했는데, 이때부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제주 지역 종목은 무용 중심의 민속놀이에서 소리 중심으로 바뀌었다.
1965년부터 1975년까지 10년간은 제주 민속무용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전국무대에서 빛을 발한 제주여자중학교와 제주여자고등학교 무용부는 1967년 9월 11일 ‘제주민속예술단’이란 이름으로 새 간판을 달았다. 이에 앞서 제주예총 산하에 무용가협회가 창설되어 무용인들의 결속을 다지는 한편, 고수선의 주도로 1972년 사설 무용단인 ‘인당민속예술단’도 창단되었다.
제주 무용계를 이끈 제주민속예술단(단장 이경수)은 1968년 제주의 향토 문화를 전국에 선양한 공로로 제7회 ‘제주도 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제주민속예술단의 활동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한라문화제는 물론 각종 도민예술제에 참가하는 한편, 제2회 아세아국제예술대회(1971년 5월)에서 「잠녀놀이」와 「영등굿놀이」로 종합 우수상인 최우수상을 받았다.
제주민속예술단은 또 1972년 제3회 아시아국제예술대회에도 송미옥·문계순 등 14명이 출연해 삼다·삼무·삼보를 형상화한 「한라의 여성」으로 최우수상을 받아 제주 민속 무용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이처럼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와 아시아국제예술대회에서 수차례 우수한 성적을 보인 제주민속예술단은 제주여자중학교와 제주여자고등학교 무용부의 위상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제주 민속의 우수성도 고양하는 계기가 되었다. 송근우가 개발한 ‘제주 민속 무용’은 제자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전수되고 있다.
3. 1980년대
1980년 4월 27일 제주 무용계의 거목이던 송근우의 죽음으로 제주 무용계는 한때 휘청거리는 듯했으나 뜻있는 문화 예술인과 김희숙, 양성옥 등 제자들에 의해서 맥을 이어갔다.
또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출품작들이 일회성으로 사장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제주 지역의 뜻있는 문화 예술인들에 의해 1985년 9월 16일 ‘제주시립민속예술단’이 창단되었다.
‘88서울올림픽 성화봉송축제’가 제주도를 경유하게 되자 제주도를 대표할 예술단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1987년 6월 11일 재단법인 제주도 민속예술단(단장 박부찬) 설립 허가를 받아 그 해 7월 10일 ‘제주도 민속예술단’이 창단되었다.
재단법인 제주도 민속예술단은 법인 설립 2년 9개월 만에 제주도립민속예술단으로 전환했다. 제주도립민속예술단은 무용부, 민요부, 놀이부 등 3개부 정원 40명으로 출발했는데, 공개 전형으로 16명의 단원을 뽑아 활동에 들어갔다.
1987년 7월에는 제주도 내 초·중·고등학교 무용 교사들이 학교 무용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학교무용연구회를 창립하였고, 1989년 10월 27일 ‘한국무용협회 제주도지부’가 재창립되면서 제주 무용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4. 1990년대 이후
‘한국무용협회 제주도지부’는 1991년 12월 28일 ‘제1회 창작무용제’를 시작으로 매년 창작무용제와 ‘한라문화제 무용제’, 도민들과 함께 하는 ‘한여름밤의 해변축제’ 등을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1992년 문화관광부 지정 ‘춤의 해’를 맞아 시작된 ‘전국무용제’에 제주 지역을 대표하는 무용단을 꾸려 참가하고 있는 한국무용협회 제주도지부는 1996년 제5회 전국무용제와 2005년 9월 제14회 전국무용제를 개최해 제주 지역 무용의 위상을 높였다.
한편 제주도립민속예술단은 1997년 7월 이름을 제주도립예술단으로 변경하여 제주민속무용단, 제주민속합주단, 제주민속합창단 등 3개단 정원 120명의 조직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그러나 조직 개편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립예술단은 합주단과 합창단은 단 구성도 못한 채 표류하다 2004년 4월 무용단과 오페라단 등 2개단 정원 100명 규모로 재정비에 들어갔다.
1990년대 이후 제주 출신 무용인들의 개인 발표회도 잇따랐다. 한성대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한 김정희가 1994년 7월에 창작춤 발표회를 가져 「그건 바람이 아니지」와 「영혼연습」을 무대에 올렸다.
조선왕조의 재인청에서 마지막 도대방직을 지낸 운학 이동안의 예술 세계를 잇고 있는 제주 출신 무용가 박경숙도 1994년 12월 고향에서 ‘영맥’ 공연을 가져 「신칼대신무」, 「대평무」, 「즉흥무」, 「비나리」 등 한국 전통 무용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송근우에게서 사사한 남성 무용수 고춘식은 한국무용협회의 창작무용제와 전국 무용제에 얼굴을 내밀었고, 1995년 10월 「생명의 길 나서는 젊은 춤꾼 이야기-고춘식의 춤과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개인발표회도 가졌다. 또 김희숙, 이연심, 오은정, 이경희, 한인희, 강지희, 김정, 이종익, 이지은, 고희숙 등도 다양한 무대를 꾸몄다.
한편, 제주도문화진흥원은 무용 관련 자료집인 『제주도립예술단사』(1990~2001)를 발간하는 한편, 2003년 11월 제27회 정기공연 작품 중 「해녀춤」과 「물허벅춤」을 무보화해 제주 춤 무보집인 『해녀춤·물허벅춤』(2005년)과 문무병·칠머리당보존회·박영란이 함께 『제주도의 굿춤』(2005)도 발간하여 제주 무용을 기록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