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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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門路 |
영어음역 | Dongmunno |
영어의미역 | Dongmunno Road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도로와 교량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경수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 1동 중앙 로터리와 건입동 6호 광장 사이에 있는 도로.
[개설]
동문로와 그 일대 구 도심권이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면서 동문로는 과거의 중심에서 지금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 정부에서는 북 초등학교와 칠성통을 중심으로 한 무근성~산지천 일대 구도심 50만㎡를 전면 재개발하는 계획을 추진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제원]
총 연장 2,020m이며, 왕복 4차선의 중앙로에서 동쪽으로 뻗은 구 도심의 주요 간선 도로이다.
[명칭 유래]
제주읍성의 동문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 되었으며, 지금의 동문 파출소가 있는 자리이다. 이곳에는 아직도 동성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읍성 흔적이 남아 있는 부근의 마을을 ‘성굽’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문의 문루를 제중루(濟衆樓), 또는 연상루(延祥樓)라 하였다. 『증보탐라지』에 의하면 “연상루의 옛 이름은 제중루니 읍성의 동성문이다. 1666년 병오 현종 7년에 목사 홍우량(洪宇亮)이 증수하였고, 1808년 무진 순조 8년 목사 한정운(韓鼎運)이 증수하였다.
1856년 병진 철종 7년에 목사 채동건(蔡東健)이 다시 증수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경위]
동문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문통으로 불려졌다. 구간은 동문 로터리에서 신산머루 입구까지 약1㎞에 이르고 있으며, 1966년에 도로 너비가 8m에서 20m로 넓혀졌다.
동문로에 상가가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때는 주변에 논과 밭이 많았고 8·15 광복 이후에야 주택가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상가 형성이 비교적 더디였다.
부근인 동문 로터리에 상설 시장인 동문 시장이 생겨난 뒤 현재 제주경찰서 동문 파출소 사이 구간에 쌀집·솜틀집·기름집·헌옷을 수선하는 집 등이 몇 군데 있었을 뿐이었다.
그 뒤 1966년 말 동문로의 길 너비를 8m에서 20m로 넓히는 확장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상가가 서서히 들어서기 시작되었으며, 지금은 동문 로터리, 동문 시장 상권과 연계되면서 계속 권역이 넓어지고 있다.
[현황]
동문 로터리의 동쪽을 이야기하며, 산지항과 연결되어 있고, 중앙로와 사라봉을 연결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동문로의 중심에 있는 제주 동 초등학교는 제주시 동부 지역의 초등교육 기관으로 전통이 깊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 병사들의 활쏘기 연습장인 연무정(演武亭)이 1636년(인조 14)에 세워졌던 자리이다. 그 뒤 일제강점기 때는 제주 농업 학교가 학생들의 제1실습지로 정해 현 제동교지에서 옛 주정공장 근처까지 몇 만평을 보통 작물포로 사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동문로에는 산지천이 있어 새로운 명소로 알려지고 있다. 산지천의 분수 광장에서 열리는 문화 관광 상설 프로그램으로서 산지천 예술 마당은 주변 상권 활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토요일에 이루어지는 공연을 선호하는 관람객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