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5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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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路 |
영어의미역 | Road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경수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인간이나 차가 다니는 비교적 넓고 큰 길.
[개설]
해방 후 제주의 교통은 1961년 5·16군사쿠테타 정부가 수립된 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주의 미개발된 천연 자원과 민속 등을 자원으로 하여 관광 개발을 정부시책으로 추진하면서부터 사회 간접 자본의 건설로서 시작되었다.
그 뒤 정부는 1973년 여러 차례의 수정과 보완을 거쳐 제주도 관광 종합 개발계획을 확정함으로써 관광객 수송과 도내 토지이용 효율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도로 개발을 비롯하여 항만과 공항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도로의 개발은 그 지역의 산업 발전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고 그 지역의 개발 수준을 말해주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제주시에서는 해마다 도로율을 높이기 위해 많은 재원을 투입하면서 도로의 신설 확장은 물론 교량 건설, 도로의 유지 보수 등의 여러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1960년대에도 제주시의 도로는 구 시가지에 협소한 재래 도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시가지 가용 면적에 대한 도로의 비율이 매우 낮았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인구의 급격한 팽창과 도시화 추세 등으로 기설 도로만으로는 교통난 등을 해결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제주시에서는 새로운 도시 계획에 따라 인구의 교외 분산을 도모하고, 늘어나는 교통난을 완화키 위해 많은 재정 투자와 함께 도심지와 외곽지를 연결하는 간선 도로를 신설 또는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1984년 도로율은 16.4%로 끌어 올려졌다.
1984년 건설과 집계에 의하면 제주시 면적 253.97㎢ 상도로의 총 면적은 6.058㎢, 도로 총 연장은 670.16㎞에 이르고 있으며, 상태별로는 국도가 72.546㎞[총 면적 1.235㎢], 지방도 29.2㎞[0.293㎢], 시도 568.414㎞[총 면적 4.53㎢]에 이른다.
이 가운데 포장도로는 1983년 말 기준 총 연장 308.8㎞이며, 그 중 국도가 57.4㎞, 지방도 7.2㎞, 시도는 244.2㎞로 나타났다.
[개황]
제주도의 발전은 도로의 개발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시대와 근대화 시기라 할 수 있는 1900년대 초의 도로는 지금의 도로와는 크게 달랐다.
도로의 여건이 지금과 다른 결과로 인해 제주도 전체의 이동의 내용과 동선체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도로에 포장이 되지 않아 한라산을 관통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1900년대 초 당시에는 윤선[기관선]이 제주도를 일주하고, 사람과 물자의 이동은 이 윤선에 의존하는 형태를 보이기도 했다.
도로의 개설과 확장사업은 시기적으로 볼 때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 이루어졌다. 지금의 일주 도로격인 신작로가 도민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8·15광복이 되면서 횡단 도로 포장 작업과 일주 도로 포장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이처럼 일주 도로 포장 작업이 본격화 되면서 과거와는 달리 육상 교통에의 의존도가 매우 커졌다.
육상 교통에 의존하게 되면서 제주를 일주하던 여객선들은 차츰 자취를 감추었고, 여객선은 제주시와 서귀포시에서 목포나 부산 등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60년대 이후 제1횡단도로와 제2횡단도로의 완공, 평화로와 번영로의 완공, 산록도로 등의 완공으로 제주도는 어느 곳이든 목적지에 한 시간 내에 도착하게 되는 편리한 지역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제주도는 8·15광복 후 낙도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대부분의 정부 시책에서 소외되어 왔으나, 5·16군사쿠테타 후 해군소장 김영관이 도지사로 부임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963년부터 본격적인 도로 개발이 시작되었고, 첫 사업으로 시작된 것이 한라산을 동쪽으로 가로 질러 제주시와 서귀포를 잇는 횡단 도로 건설과 포장이었고, 제주도에 현대식 포장도로가 등장한 것은 이것이 효시이다.
제주도의 법정 도로는 2004년 말 기준 4,389개 노선에 3,200㎞이다. 도제 실시 당시인 1946년 도로 총 연장 306.1㎞와 비교하면 무려 11배의 신장률을 기록해 가히 ‘도로혁명’을 가져온 셈이다.
유형별로는 국도가 5개 노선 453.9㎞, 국가 지원 지방도 1개 노선 35.4㎞, 지방도 10개 노선 264.2㎞, 시·군도 4373개 노선 2,446.7㎞, 등이다. 여기에다 농어촌 정비법에 의한 농·어촌 도로가 262개 노선에 77.09㎞는 별도로 개발되고 있다.
제주시 지역의 경우 2002년에는 도로의 총 연장은 144만 1950m였으며, 이 중 포장도로는 132만 4635m, 미 포장도로는 6,972m, 미 개통이 11만 523m가 되었다. 이중 지방도는 3만 5520m이며, 일반 국도는 72,340m, 시도는 133만 4090m이다.
2006년 말 현재 제주시 지역 도로 현황을 보면 먼저 국도가 72.34㎞이다.
또한, 지방도는 398.9㎞[동 지역 109.8㎞, 읍·면지역 289.1㎞,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으로 제주시와 북제주군이 통합됨]로 미 개통은 44.8㎞[동 지역 6.0㎞, 읍·면지역 38.8㎞]로 포장율은 88.7%이다. 시도[동 지역]는 3,949노선에 1,335.4㎞로 포장도로 1,233.1㎞, 미 포장 6.8㎞, 미 개통 95.5㎞로 포장율이 92.3%이다.
군도[읍·면 지역]는 76개 노선에 481.5㎞로 이 중 포장도로는 288.1㎞, 미 포장도로 193.4㎞로 포장율은 59.8%에 달하고 있다. 농어촌 도로[읍·면 지역]는 134개 노선에 409.2㎞로 포장도로 203.6㎞, 미 포장 205.6㎞로 포장율이 48.8%에 이르고 있다.
이에 따른 제주 지역 도로 포장율은 82.7%에 달한다. 이는 전국 16개 시·도 평균 72%, 전국 평균 76.7%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이다. 그리고 일면에서는 제주도의 도로가 어느 지역보다 과잉으로 공급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도시화율이 거의 100%에 달한다고 할 수 있는 광역시를 제외하고는 제주도보다 도로 밀도가 높은 곳이 없다. 특이한 것은 인천광역시와 울산광역시의 경우 제주도보다 면적 대비 도로 밀도가 낮다. 이러한 통계로 볼 때 이제는 제주도가 토지를 아껴야 할 때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1900년대 이전 도로]
제주도의 도로 개발을 역사적으로 고찰하여 보면 제주도에 처음으로 현대적 의미의 도로가 개설된 것은 1920년 이른바 ‘신작로’라 불리는 해안 일주 도로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이전에는 도로가 이웃 마을끼리 연결하는 보도를 위한 도로에 불과했다. 이보다 앞서 원시적인 마을간 통로에서 지역 간 연결 도로가 만들어진 것은 1416년(태종 16) 제주도가 제주읍·대정읍·정의읍 등 3읍으로 나누어져 이 3개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가 중 산간에 만들어졌다.
이후 육지와의 나들이로 해안 마을이 차츰 형성되면서 이들 마을과 연결되는 통로가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지게 되면서, 해안 마을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인 해안 신작로가 만들어졌다.
제주에 관한 지도로는 1702년(숙종 28)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관내를 순시하며, 화공 김남길이 그린 『탐라순력도』와 「탐라지도」, 「제주삼읍도총지도」 등이 있지만 도로 표시는 전혀 없다.
한편, 제주를 왔다 간 추사 김정희, 청음 김상헌, 충암 김정 등도 각각 그들의 기행문체서 “길이 모두 자갈길로 인마(人馬)조차 다니기 어려웠다”고 기록하고 있어서 도로 다운 도로가 제주도에 없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제주목과 각 성간을 연결하는 도로가 표시된 바 거기에는 해안 일주 도로와 대정현~서귀성[현 고산], 제주목~명월, 제주목~대정, 제주목~정의, 제주목~별방소[현 하도] 등 5개 노선만 표시되어 있다.
[주요 도로]
1. 일주 도로와 포장
제주도 내 해안 일주 도로가 1912년 6월 17일 국도로 승격하였다. 그 뒤 1914년에는 관덕정을 기점으로 동~서 방향으로 일주하는 신작로(新作路)의 총 178㎞의 도로가 국도로 승격되었다.
1971년에는 일주 도로가 포장되었다. 포장 공사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준공한 일주 도로는 총 공사비 9억 8876만원[국비 1억 7650만 9000원, 도시군비 5억 358만 1000원, 주민 노력 부담 2억 7717만 1000원]과 연 인원 52만 2600명이 동원되었다.
1972년에는 이승택 지사 때 장차 국제관광지로서 교통량을 감당하지 못할 것을 예측하여 도로 폭 7m를 15m로 확장할 것을 추진하여 1974년까지 예산 없이 도민의 희생과 노력으로 농지 8,050필지 36만평을 도로에 편입시켰다.
따라서 포장폭도 4m에서 7m로 포장하고 2차선으로 재 포장공사를 실시하였다. 1994년부터는 노폭 24.5m에 포장 폭 15.5m로 현재 확장 포장 중에 있다.
2. 횡단 도로와 포장
일제강점기 때 이용되다 중단 되었던 횡단 도로의 1차 복구공사는 1958년 6월 6일에 완료되었다. 총 공사비 1500만환으로 제주시 삼의악교로 부터 수장원 동북쪽까지 1차로 7,440m길이를 착공하여 7개월 만에 완공되었다.
제주시를 기점으로 한라산 동쪽을 거쳐 서귀포까지의 45㎞의 횡단 복구공사는 예산 관계로 못하다가 제주시 삼의악교부터 서귀포읍 토평리까지 35㎞의 길이를 국고 보조로 복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평면 도로로 개척한 채 버려둔 것을 23년 만에 복구에 착수한 것이다. 길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잡목이 우거진 길을 넓이 6.5m의 폭에 양쪽으로 1m 깊이의 도랑을 파고, 노면에는 4m 넓이로 돌 자갈을 깔아 놓았다.
동 공사구간 내에는 세월(洗越) 2개소, 암거(暗渠) 2개소, 도수로(導水路) 6개소를 신설하였다. 공사는 제주시 국화기업사가 청부하여 작업 일수는 186일 연간 인부는 19,300명, 1대의 덤프트럭이 80일간 외도동·오라동, 애월읍 하귀리 등지에서 돌 자갈과 모래를 운반하였다.
2차공사도 국화기업사가 맡았다. 기록에 따르면 횡단도로 삼의악교를 가기 전 2㎞와 수장원 남쪽 4.37㎞의 복구공사를 국화기업이 1897만환에 낙찰한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총 복구공사 예정거리 30㎞ 중 절반에 가까운 거리가 복구되었다.
본격적인 횡단 도로[5·16도로]의 포장은 1962년 3월 23일에 기공하여 1969년 10월 1일에 개통식을 가지면서 완성되었다. 이 도로의 포장 완공으로 제주~서귀포 간 5시간을 1시간여로 단축하고 원시림을 감상할 수 있는 관광도로로서 절찬을 받게 되었다.
그 뒤 도로의 확장 공사가 추진되어 1981년에 완공할 때까지 총 공사비는 53억 2300만원이 투입되었다. 또 1972년 4월 18일부터 1982년 12월 31일까지 통행요금을 대형버스 400원, 중형버스 250원, 소형승용차 200원, 트럭 150원, 소형화물차 100원을 받았다.
당시의 징수 요금은 3억 7728만 7000원이었는데, 요금 징수를 폐지하였다. 그 이유는 이용 차량들이 불편하고 도로가 1963년에 국도로 지정된 상태에서 도가 요금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였다. 1963년 2월 6일 국도로 지정이 되면서 5·16도로로 명칭이 개칭되었다.
3. 5·16도로의 개통
횡단 도로의 개통식은 5·16군사혁명 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일을 불과 5일 앞둔 1963년 10월 11일 제주시와 서귀포 양쪽에서 거행되었다. 이 때 공정률은 70% 였다.
횡단 도로 43㎞ 구간이 6~7m 너비로 확장된 것은 사실이나 포장 구간은 산 북쪽 12㎞, 산 남쪽 8㎞ 등 모두 20㎞에 지나지 않았다. 1962년 3월 기공식을 가진 횡단도로 포장 공사 첫 해에는 국고 3,000만원과 지방비 549만원이 투입되었다. 이 도로가 1963년 2월 5일 지방도에서 국도로 승격되면서 그 대신 지방비 부담은 없어져 국고 4,000만원이 지원되었다.
이로 인해 전 구간이 확장되었으며, 교량 14개소[길이 224m]가 가설되거나 확장되었으나 아스팔트포장은 공사비가 모자라 47%의 진척에 그쳤다.
4. 제2횡단 도로의 개통
1969년 이후 제2횡단 도로[서부횡단도로, 1100도로라고 불림] 37㎞가 포장되어 1973년 12월 12일 완료되었다. 이 도로는 제주~중문간 교통소통 완화, 영실, 아흔 아홉 골, 어승생, 어리목 등의 경승지 개발, 연변 유휴지 20,000㏊ 개발 등 제주도의 산업과 교통 발전에 큰 구실을 하게 되었다. 이 도로는 1969년부터 1973년까지 4년에 걸쳐 포장 공사를 하였는데, 1차는 1969년~1970년 4월까지 18㎞, 2차는 1973년 5월~12월까지 19㎞를 하였는데, 총 공사비는 5억 원이었고, 개통식은 1973년 12월 17일에 거행되었다.
5. 서부 관광 도로 준공
제주시와 중문 관광단지를 잇는 서부 관광 도로 확장 사업 준공식이 2002년 5월 3일 오후 남제주군 안덕면 동광인터체인지에서 열렸다. 서부 관광 도로 확장은 지난 1998년 3월에 착공, 1528억 원이 투입되어 만 4년만인 2002년 3월 애월읍 광령리~안덕면 동광리 22㎞구간이 왕복 2차로에서 왕복 4차로로 확장되었다.
제주도 내에서는 처음으로 교차로를 입체화하여 전 구간을 논스톱으로 주행할 수 있으며, 제주~중문간의 소요 시간을 50분에서 30분으로 단축하였다. 또한, 제주시 지역과 제주 서부, 서귀포시 지역 간을 연결하는 중추 기간 도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6. 동부 관광 도로 확장
국가지원 지방도인 동부 관광 도로 확장·포장 사업이 국비 지원으로 가능하게 되었으며, 2011년 완공 계획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2002년 10월 1일 제주도에 따르면, 건설교통부는 이날 제주도가 요청한 동부 관광 도로 확장·포장 사업에 따른 공사비로 2002년 국비 10억 원을 지원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동부 관광 도로 확장·포장 사업은 제주시 건입동 6호 광장에서 남제주군 표선면 표선리를 잇는 총 연장 35.9㎞를 현행 12m에서 24.5m로 넓히는 사업이다. 총 공사비 2300억 원으로 2011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제주도는 건교부에서 1차 사업 구간에 국비를 지원함에 따라 우선 제주시 봉개초등학교에서 조천읍 와산리 샘이오름까지 8.8㎞에 대한 확장·포장사업을 연차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이를 위해 도는 2003년 북제주군 구간의 확장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제1회 추가 경정 예산에 보상비 30억 원을 확보했으며, 공사 추진에 따른 보상 업무에 착수했다.
제주도는 남제주군 표선면 표선리와 성읍리를 잇는 6.3㎞의 구간에 대해서는 2003년 7월에 실시 설계 용역이 마무리 되어 국비를 지원받아 이 구간에 대해서도 조기에 착공한다.
그리고 조천읍 와산리에서 표선면 표선리를 연결하는 15.9㎞구간에 대해서도 중앙 절충을 통해 국비를 최대한 조기에 확보해 공사를 하기로 했다. 특이한 것은 동부 관광 도로의 확장과 더불어 전주가 없이 땅속으로 매설 된다는 것이다.
한국전력 제주지사는 최근 35.9㎞에 이르는 동부 관광 도로 확·포장 전 구간에 대한 배전선로 지중화 사업비 200억 원의 확보가 어려워 1단계 구간인 제주시 봉개초등학교~조천읍 와산리 8.8㎞에 대한 사업을 우선 추진한다.
7. 제2도시 우회 도로 개설 착공
제주 시내 교통 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제주시 연동지구에서 제주여자고등학교 서쪽 구산 마을을 잇는 제2도시 우회 도로 공사가 2002년 9월 16일 착공되었다.
제주시는 2004년 말까지 총 사업비 460억 원을 투입[공사비 320억, 보상비 140억] 총 길이 3,750m, 폭 35m[왕복 6차선]의 도시 우회 도로 개설 사업을 3개 공구로 분리했다.
이 사업은 지방 양여금으로 시행되는 것으로, 특히 사업기간 단축을 위해 공사를 먼저 시행하고, 대금은 나중에 지불하는 채무 부담 사업 방식을 채택해 당초 공사기간보다 공기를 단축하였다.
8. 외도~신 제주도로 준공
제주시 외도~신제주 오광로[월산정수장 입구]간 도평로 도로 개설사업이 공사 착수 5년 만에 완공되었다. 모두 131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외도~노형 오광로 간의 도로는 3개의 교량을 포함해 길이 3.7㎞, 너비 20m로 개설되었다.
그동안 막바지 공사 시 문제가 되었던 탐라시대의 유적 출토 구간은 원형 그대로 보존하면서 흙을 60㎝ 정도 높이는 특수 공사 기법이 도입되었다. 도평로는 2002년 6월에 준공될 계획이었으나 공사과정에 기원후 1~3세기의 마을 유적과 우물 유적 등이 출토되어 완공이 지연되었다.
9. 회전형 교차로
2002년 5월에는 제주대학교 입구 교차로가 회전형 교차로로 전환되었다. 이 회전형 교차로를 라운드 어바우트(Round Abouts)라고 한다. 사업비 2억 5000만원을 들였다.
여기에 있던 소나무를 두고 그 동안 벌채 및 이식 등을 놓고 고민을 했던 도로 가운데의 100년생 해송은 그대로 둔 채 이를 중심으로 개설한 것이다.
10. 서광로 확장사업
광양로터리에서 신 제주 7호 광장에 이르는 전장 3,500m의 이 도로는 제주시에서 노폭이 가장 넓은 35m에 왕복 6차선으로 되어 있다. 이 도로의 확장 개설로 기존 시가지와 신 제주[연동]를 잇게 되어 제주시에선 또 하나의 명물로 등장했다.
1982년 5월부터 1983년 3월말까지 시공된 이 도로의 완공으로 제주공항의 관문 도로로서 도시 미관을 한결 산뜻하게 하는 도로가 되었다. 특히, 제주시는 확장공사 때부터 이 도로 주변의 조경에도 힘을 기울여 한라산 일대에 산재해 있던 돌을 옮겨 길 양편을 단장하였다.
그리고 제주도 고유의 미풍양속인 ‘정낭’을 설치하고 동백나무를 심었다. 지금은 그린벨트가 해제되어 개발이 활성화 되면서 도로 주변의 조경이 많이 훼손된 측면이 있다.
11. 해안 도로 개설사업
해안을 관광 자원화 하기 위해 1983년 3월 공사에 착수, 11억여 원을 들여 전국소년체전 개최 전인 1984년 4월에 개통했다. 이 공사로 인해 이 도로가 통과하는 수근동 등의 저촉가옥 45동이 철거되고 19,200㎡의 토지소유자에게 보상했다.
당시로선 최신 공법인 아스콘 포장으로 이루어진 이 도로는 서쪽으로는 제주시 도두 해안가에서 제주국제공항 북측의 바닷가를 따라 용두암 앞까지의 굴곡도로 4,230m를 폭 15m로 개설되었다.
12. 용문로 확장사업
전국소년체전을 앞두고 제주시 당국에서 역점을 두고 펼친 공사로 종래 구부러지고 협소한 2차선의 재래식 도로의 구배가 한결 완화된 4차선의 시원한 아스콘 포장으로 새 길을 만들었다.
본래 이 도로는 일제강점기 때 만들었던 일주 도로로 제주시 서쪽을 관통했는데,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모여 살아 마을을 이루던 한천교 동쪽까지는 1970년대 후반까지 도로가 확장되었다.
그러나 한천교 서쪽부터 속칭 ‘먹돌새기’를 거쳐 공항에 이르는 폭 8m의 이 도로 확장 사업은 미루어졌다. 특히, 이곳은 제주도의 관문이라고 하는 공항 근처인데도 도로 사정이 나쁘고 주변에는 낡은 가옥들이 몰려 있어서 이곳을 지나는 내외 관광객들에게는 좋지 않은 모습이었다.
결국, 소년체전을 앞두고 제주시와 주민들의 협조로 확장 공사가 완공되었다. 용문로 확장공사에는 수익자 부담금 2억 원을 포함해 모두 20억 500만 원이 투입되었다.
이 외에도 산지로 등의 많은 도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