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4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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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熙洙 |
영어음역 | Kim Huisu |
이칭/별칭 | 김희명(金熙明)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699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나영 |
성격 | 항일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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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699 |
성별 | 남 |
생년 | 1899년(고종 36) |
몰년 | 1985년 |
본관 | 김해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1919년 3월 21일 제1차 조천 만세 시위 운동이 일어났다. 이 항일 운동은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인 김장환(金章煥)이 서울 3·1운동에 참가한 뒤 3월 15일 귀향하여 김시범(金時範)·김시은(金時殷) 등에게 서울의 소식을 알리면서 구체화되었다.
김시범을 주축으로 하여 14명 동지를 규합하는 것으로부터 거사가 준비되었고, 김희수는 14명 핵심 세력의 한 명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1일 제1차 조천 만세 운동은 군중 5백여 명이 시위 행진을 벌이면서 전개되다가 제주경찰서에서 파견한 증원 경찰에 의해 강제로 진압되었다.
김희수는 김시범(金時範)·김시은(金時殷)·김용찬(金容燦)·고재륜(高載崙)·김형배(金瀅培)·황진식(黃鎭式)·김장환(金章煥)·김경희(金慶熙)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아 항소하였고, 1919년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조천 만세 시위 운동의 핵심 인물 14명은 출감 이후 1921년 동미회(同味會)를 조직하였다. 동미회의 조직원들은 감옥에서 새끼를 꼬아 얻은 약간의 금액을 공동 관리하기로 결정하고 김희수로 하여금 재무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0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