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4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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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炯洙 |
영어음역 | Kim Hyeongsu |
이칭/별칭 | 김홍명(金弘明)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 152 |
시대 | 근대/근대 |
성격 | 항일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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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 152 |
성별 | 남 |
생년 | 1905년(고종 42) |
몰년 | 1988년 |
본관 | 나주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김형수는 제주공립농업학교 동창인 고병희(高秉禧)·조대수(趙大秀)를 비롯해 고영희(高永禧)·강기찬(康箕贊)·임상국(任祥國) 등과 함께 1927년 3월경에 무정부주의 연구에 필요한 문고(文庫)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또한 매달 1회 모여 공동으로 연구 발표하고, 동지를 규합하여 조직을 확대하기로 하였다.
1928년 4월경 비밀 결사 독서회의 조직에 참여하여 공동 구입한 사회과학 도서를 돌려 읽고 매월 30원씩을 모아 공동 연구하기로 결의하였다. 1929년 5월 5일에 우의돈목(友誼敦睦)·경조상문(慶弔相問)·생활 향상 등을 목적으로 하는 우리계(宇利契) 조직에도 참여하였다.
우리계 계원 가운데는 도청·은행·금융·조합·학교 등의 직원과 제주도 내 유지들이 대거 참여하였고, 그들은 1929년 9월 도내 각 동·리에 야학을 설립하여 항일 의식을 고취하고 무정부주의 사상을 선전하였다. 우리계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정부주의 비밀 결사로 발전시켜 독립을 달성하는 데 있었다.
1930년 7월 우리계의 무정부주의 항일 운동이 발각되어 관련자들이 체포되었다. 1930년 12월 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고병희는 징역 5년, 조대수는 징역 5년, 고영희는 징역 4년, 강기찬·김형수는 각각 징역 3년, 임상국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임상국을 제외한 전원은 항소하여 1931년 7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고병희와 조대수는 각각 징역 3년, 고영희·강기찬·김형수는 각각 징역 2년 6월이 선고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3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