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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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忠熙 |
영어음역 | Kim Chunghu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찬식 |
성격 | 정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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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 |
성별 | 남 |
생년 | 1890년(고종 27) |
몰년 | 1960년 |
본관 | 김해 |
대표경력 | 제주도지사|대한독립촉성청년연맹 제주도위원장|자유당 제주도당 부위원장 |
[정의]
제주도지사를 역임한 정치인.
[활동사항]
1910년 의신학교를 거쳐 서울의 보성학교에 재학 중 한일합방이 되자 1911년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하였다. 구좌읍에 있는 사숙(私塾)에서 1년 동안 교사로 일하였고, 외도동에 희문의숙(熙文義塾)을 개설하여 숙장으로서 후학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며 청년 운동을 주도하였다.
1949년 11월 15일 제5대 제주도지사로 부임하여 제주 4·3사건으로 인한 피해 복구를 처리하였는데, 특히 제주 4·3 때 무장대의 습격으로 소실된 도청의 청사 건립에 착수하였다.
1950년 8월 ‘제주도유지사건’이 발생하여 제주법원장·제주지검장·제주읍장 등이 계엄사령부에 구금되었을 때, 직접 구명 운동에 나서 무고로 인한 사건임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51년 1·4 후퇴 때 제주도에 15만여 명 가까운 피난민이 몰려들자, 중앙정부에서는 사회부 제주도 분실(분실장 최승만)을 설치하여 피난민 구호 사업을 주도하게 하였다. 피난민 구호 사업을 둘러싸고 사회부 제주도 분실과의 갈등이 심해져 같은 해 8월 1일 사표를 제출하였고 후임에 최승만이 임명되었다. 퇴임 후 1953년 11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제주도지부장, 1954년 1월 자유당 제주도당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