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4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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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昌洙 |
영어음역 | Kim Changs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찬흡 |
[정의]
조선 말기 제주군수를 역임한 관인.
[활동사항]
1901년 2월 17일에 제주군수로 임명되어 김희주의 후임으로 부임했다. 1901년 1월에 제주목사였던 이상규(李庠珪)가 불법으로 돈을 거둔 죄로 면직되어 있던 상태여서 제주목사 서리를 겸직했다.
같은 해 3월 유배와 있던 천주교도 이범주(李範疇) 구속 사건으로 1900년 6월에 제주 담당 신부로 와 있던 프랑스 신부 구마슬(具瑪瑟, Marcel Lacrouts)과 갈등이 일어났다. 이어 제주 주민과 천주교 신자 간에 반목과 갈등이 심해져 3월 말 이재수의 난으로까지 이어졌다.
김창수는 구마슬·문제만 두 신부와 합세, 제주성을 사수하기로 하고 군기고의 무기를 꺼내 수비했다. 군중들이 구마슬 신부를 살해하려는 것을 저지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난민이 주성을 포위하자 구마슬 신부에게 성을 맡기고 별도(別刀, 현재 제주시 화북동)로 피신하였다. 이 일로 김창수는 면직되었다.
이후 중추원의관으로 발령받아 동년 6월 1일 기선 현익호 편으로 인천을 거쳐 서울로 갔다. 1902년 3월 재차 제주군수로 부임하였다가 8월 26일 다시 중추원의관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