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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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林瀅 |
영어음역 | Kim Imhye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1297[세화남길 8-7]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찬식 |
성격 | 항일운동가|학생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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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1297[세화남길 8-7] |
성별 | 남 |
생년 | 1915년 |
몰년 | 1949년 |
본관 | 김해 |
[정의]
일제강점기 때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개설]
본관은 김해. 아버지는 김홍지(金洪祉)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1297번지[세화남길 8-7]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1932년 3월에 사립 하도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2년 4월에 협성실업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학년 때 사립 경신학교로 전학하여 1학년을 수료하였다. 이후 경성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 고등과에 입학하여 1학년 때 퇴학당하였다.
중국으로 건너가 1934년 4월에 룽징시[龍井市] 동흥중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1935년 3월에 4학년을 수료한 후 같은 해 4월에 경성공업학교(서울공업고등학교의 전신)에 입학하여 1938년 3월에 졸업하였다.
동흥중학교 재학 때 교사의 민족주의 교육과 공산주의 사상에 공감하여 조선이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는 길을 모색하였다.
1936년 5월 초순경에는 서울에서 김종천(金鍾千)·박병윤(朴炳允) 등과 함께 일반상식 함양을 목적으로 조직한 독서회인 우리학교를 개편하고 경성공업학교 동창생들을 권유·참석시켜 사회주의 서적을 교재로 사회주의와 항일사상을 전파하였다. 이 일로 1938년 5월 7일 체포되었다.
1938년 12월 7일에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모진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인해 병을 얻어 석방되어 귀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