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3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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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時坤 |
영어음역 | Kim Sigon |
이칭/별칭 | 한천(汗泉)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박찬식 |
성격 | 항일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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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
성별 | 남 |
생년 | 1901년 |
몰년 | 1983년 |
본관 | 김해 |
대표경력 | 하도보통학교 교사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하였고, 1928년부터 하도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30년 3월 구좌읍에서 신재홍(申才弘)·문도배(文道培)·오문규(吳文奎)·강관순(康寬順)·김성오(金聲五)·김순종(金順鐘) 등과 함께 혁우동맹을 조직하였다. 혁우동맹은 사회주의 이념 아래 민족 해방을 목표로 내걸었던 비밀 결사였다.
1930년 11월 초순 신재홍·채재오(蔡載五)·강관순 등과 함께 혁우동맹의 운동 방법에 대해 협의하였으나, 동맹원 부대현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혁우동맹이 발각될 위기에 처해지자 1931년 4월 혁우동맹을 해체하였다.
1931년 이후 구좌읍 일대 해녀들의 일제의 어용 해녀조합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자, 김시곤은 해녀들의 권익 옹호와 투쟁 및 지원을 위해 1인당 10원씩을 헌금하기로 결의하는 등 해녀 항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32년 1월 7일 9개 항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해녀 1천여 명이 동원된 세화리 집단 시위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3년 2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아 항소하였고, 1933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청년 운동을 하였으며,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정권이 부패하자 민주당에 입당하여 야당 생활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