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3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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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聲五 |
영어음역 | Kim Seong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연평리 849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찬식 |
성격 | 항일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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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연평리 849 |
성별 | 남 |
생년 | 1912년 |
몰년 | 1986년 |
본관 | 김해 |
대표경력 | 혁우동맹원|조선공산당 제주도 야체이카 당외 기관원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개설]
본관은 김해. 아버지는 김용익(金用益)이다. 일제강점기 우도에서 강관순·신재홍과 더불어 항일 운동의 삼천재(三天才) 또는 삼총사라 불리웠을 만큼 우도 출신의 대표적인 항일운동가이다.
[활동사항]
1930년 3월 구좌읍에서 신재홍·오문규(吳文奎) 등과 함께 비밀 결사 혁우동맹을 결성하였다. 1931년 4월 혁우동맹이 발각될 위험에 처하자 혁우동맹을 해체하였다. 1932년 6월 신재홍의 권유로 조선공산당 제주도 야체이카 당외(黨外) 기관원으로 가입하였다.
1931년 10월 신재홍·한원택(韓遠澤)·채재오(蔡載五) 등과 함께 당시 발생한 해녀 항쟁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해녀 문제는 해녀 자신의 노력에 의하여 해결하도록 유도할 것을 협의하였다.
1932년 1월 해녀 항쟁의 배후자로 지목받아 체포되었고, 1933년 2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아 항소하였고, 1933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일제의 감시가 심하자 강관순과 함께 함경남도 원산으로 가서 항해사 을종 시험에 합격하여 항해사가 되었다. 1986년 10월 15일 부산광역시 영도구 남항 1가 226-1번지[절영로49번길 45]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5년 3·1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