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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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萬德墓碑 |
영어음역 | Kim Mandeok Myobi |
영어의미역 | Kim Mandeok's Tombstone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426[사라봉길 75] 사라봉 모충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순만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7년 1월 24일 - 김만덕묘비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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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만덕묘비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재지정 |
성격 | 유적|묘비 |
건립시기/일시 | 1812년 11월 21일 |
관련인물 | 김만덕(金萬德) |
재질 | 자연석 |
높이 | 35㎝[비좌높이]|96㎝[비신높이] |
너비 | 47.5㎝[위]|48㎝[아래] |
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426[사라봉길 75] 사라봉 모충사 |
문화재 지정번호 |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조선 후기 행수 내의녀였던 김만덕(金萬德)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
[건립경위]
1795년(정조 19)에 제주도에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죽게 되자 김만덕은 자신의 전 재산으로 쌀을 사들여 제주 백성들을 구휼하였는데, 그 공을 기리기 위하여 1812년(순조 12) 11월 21일에 마을 사람들이 김만덕묘비를 세웠다. 2007년 1월 24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의 사라봉 기슭 모충사(慕忠祠) 경내 김만덕 기념관이 있는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비신의 높이는 96㎝이며 너비는 위쪽이 47.5㎝, 아래쪽이 48㎝로 위쪽이 아래쪽보다 약간 좁은데, 이것이 여느 비석들과 다른 점이다. 비신의 두께는 위아래가 다 같이 13㎝이다. 태석(台石)은 1단으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35㎝, 앞 너비는 60㎝, 옆 너비는 31㎝이다. 김만덕묘비 뒷면에는 지명(誌銘)이 새겨져 있으며 관석(冠石)은 없다.
[금석문]
앞면에는 “행수내의녀김만덕지묘(行首內醫女金萬德之墓: 행수 내의녀 김만덕의 묘)”라고 적혀 있으며, 뒷면에는 김만덕의 활동 사항이 적혀 있는데 그것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김만덕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탐라 양가(良家)의 딸이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영락하여 의지가지없이 가난하여 고생하였다. 자라서는 살결이 곱고 아름다워 교방에 몸을 의탁하였는데, 옷을 동여매고 식비를 줄여서 재산을 크게 불렸다.
1795년(정조 19)에 도민이 크게 굶주리자 재산을 다 내어 놓아 육지에서 곡식을 사들여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였다. 제주목사가 이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니, 왕께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소원은 서울의 번화함과 금강산의 명승을 보는 것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정조는 특별히 명하여 역로에 있는 각 고을에서 차례로 음식물을 공급케 하였고 내의녀로 삼아 은총을 베풀었다. 자주 역마[驛馬, 傳馬]를 지급케 하여 금강산 1만 2천봉을 두루 유람할 수 있었다.
제주로 돌아갈 때에는 대부(大夫)들이 모두 전별의 글로 전기(傳記)를 지어 주었다. 비록 옛날의 현명한 여자라 하더라도 아직 이런 일은 없었다. 칠순에도 얼굴과 머리가 신선과 부처를 방불케 하였고 두 개의 눈동자가 빛나고 맑았다.
다만 하늘이 무심하여 아깝게도 자식이 없었으나 양손(養孫) 김시채(金時采)를 후계로 삼았다. 김만덕의 동기(同氣)들도 능히 생전의 뜻을 준수하여 영원히 향불을 받들었는데, 또다시 무엇을 한하랴.
원릉(元陵)[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의 능] 1739년(영조 15)에 태어나고 1812년(순조 12) 10월 22일에 임종하니, 다음 달에 병원지(竝園旨)에 장사 지내었다. 1812년 11월 21일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