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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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吉云節蘇德裕逆謀事件 |
영어음역 | Gil Unjeol So Deokyu Yeongmo Sageon |
영어의미역 | Revolt of Gil Unjeol and So Deoky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한금순 |
성격 | 역모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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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601년 6월 |
종결연도/일시 | 1601년 8월 |
관련인물/단체 | 문충기|홍경원|김정걸|김대정|김종|이지 |
[정의]
1601년(선조 34) 길운절과 소덕유가 제주도에 들어와 제주 사람들과 결탁하여 역모를 꾀하다 발각된 사건.
[개설]
소덕유는 기축옥사(1589년)를 일으킨 정여립 첩의 사촌이라 자신에게도 화가 미칠까 염려하여 승려가 되었다. 이후 승장이 되어 선산 지역에서 산성을 쌓을 때 길운절과 사귀게 되었다. 소덕유는 제주도는 벽지이며 외부와 차단되어 역모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말을 사들인다는 핑계로 청포를 가지고 제주도로 들어왔다.
[역사적 배경]
1589년(선조 22) 정여립의 모반을 계기로 서인들이 동인을 몰아낸 기축옥사가 배경이 된다.
[발단]
소덕유와 길운절은 제주목사 성윤문이 민심을 잃은 틈을 타 제주도의 문충기·홍경원 등의 토호 세력과 결탁하여 성윤문과 서울에서 내려온 관리를 죽이고 경성을 침범할 계획을 세웠다.
[경과]
소덕유는 승려 혜수 등을 통해 길운절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1601년 6월 4일 토호 세력들과 함께 무리를 모아 거사를 모의하려던 중 이들의 말을 엿들은 기생 구생이 협박하였다.
한편 길운절은 정황이 불리한 데다, 역모에 성공하더라도 제주도의 병권이 문충기 무리에게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여 밀고를 하였다. 이때 제주목사 성윤문이 판관 안극효, 서울서 온 점마별감 정덕규 및 정의현감 이연경 등과 함께 성문을 폐쇄하고 군사를 풀어 역모를 꾀한 18명을 체포한 뒤 형틀에 묶어 경성으로 올려 보냈다.
육지에 있던 역모자들은 성윤문이 병사 안위와 체찰부사 한준겸에게 관문(關文)을 보내 즉시 덮치도록 하여 해남에 살던 강유정, 영암에 살던 한희수 등이 잡혔다.
[결과]
1601년 8월 3일 길운절·소덕유·문충기·홍경원·김정걸·혜수·김종·최구익·이지·김대정·강유정 등이 모두 능지처사(凌遲處死)당하여 사방에 전시(傳屍)되었으며, 가산을 몰수당하고 법에 따라 연좌되었다. 길운절은 처음 밀고한 것이 인정되어 본인이 죽는 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