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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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潭洞祭祀遺蹟出土金銅製-裝飾 |
영어음역 | geumdongje heoritti jangsik |
영어의미역 | gilt-bronze belt ornament |
이칭/별칭 | 용담동 제사 유적 출토 금동제 과대,용담동 제사 유적 출토 과대 금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강창화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제사 유적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시대의 허리띠 장식.
[개설]
허리띠 장식은 천이나 가죽으로 만든 띠의 표면을 장식하기 위한 대금구와 이에 매달리는 장식을 말한다. 이러한 장식은 금·은·동·옥·철·돌·뼈 등 여러 가지 재료로 조각하여 만들어졌다.
허리띠 장식의 기원은 유목 민족인 스키타이에까지 소급된다. 유목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허리띠에 차고 다니던 습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삼국 시대가 되면 허리띠 장식은 권력과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변화하며 신분에 따라 재질과 장식의 차이가 뚜렷이 나타난다.
삼국 시대 허리띠는 표면에 장식을 붙이는 과판 또는 과대 금구, 띠 한 쪽 끝에 붙이는 대단 금구, 다른 끝에 붙이는 띠 고리로 구성되어 있다. 요패에는 이배형·장규형(長圭形)·물고기 모양 수식, 곡옥, 숫돌, 침통, 약롱 등 특정한 의미를 상징하는 다양한 물체를 매달았다.
[형태]
제주도에서 확인된 금동제 허리띠 장식은 용담동 제사 유적에서 출토된 것이 유일하다. 이 유적의 유물 포함층에서 금동제 대단 금구 1점·과대 금구 1점·혁대 장식 1점이 출토되었다.
금동제 대단 금구는 과판의 크기가 길이 3.4㎝, 폭 2.8㎝, 두께 0.7㎝로 장방형이다. 과판구는 윗판과 아랫판으로 구분된다. 윗판과 아랫판은 각 모서리에 위치한 네 개의 작은 못으로 연결되어 있다. 윗판이 아래판보다 두터우며 약간 크게 만들어졌다. 윗판의 표면에는 아랫부분의 세장방형 구멍을 제외하고 인동 당초문이 정교하게 양각되어 있다.
투공된 세장방형의 구멍 크기는 1.85×0.72㎝이다. 모서리는 각이 지게 처리되어 있고, 구멍의 크기는 윗판과 아랫판이 동일하다. 구멍의 제작은 아래에서 위로 투공하였다. 이 때문에 판구 사각의 못도 아랫판의 배면에서 박아 넣어 윗판과 아랫판을 고정시켰다.
과대 금구는 나무판에 얇은 금동제 판구를 고정시킨 장방형 과판이다. 금동제 과판의 테는 1조의 침선 음각대를 사각으로 돌려 테 부분을 부각시켰다. 모서리 부분에는 표판에 박아 넣은 금동제 고정 못이 확인된다.
금동제 혁대 장식은 장방형의 몸체에 유선형 띠고리와 맺음코가 모두 금동제로 이루어져 있다. 이 밖에 철제 금구가 다수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허리띠 장식은 6세기에 이르러서 간략해지고 실용적으로 되면서 금제와 은제의 화려한 장식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 대신 청동제나 철제의 방형 또는 반원형의 과판이 등장한다. 역심엽형의 드리개가 사라지고 과판의 내부에 방형의 구멍을 뚫는다. 7세기 중엽 이후에는 당나라식의 복식 제도가 도입되면서 허리띠로 인한 복식의 규제가 더욱 강화된다.
용담동 제사 유적 출토품은 금동제 과판 금구의 제작 방법으로 보아 예사 신분이 착용할 수 없는 권위적 유물이며 중국제로 판단된다. 공반 유물과의 비교를 통해 볼 때, 과대 금구의 사용 시기는 8세기 이후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