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2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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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橘林堂 |
영어음역 | Gyullimdang |
영어의미역 | Gyullimdang Hall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43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동전 |
성격 | 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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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조선시대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43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조선 시대 관아 건물.
[개설]
이원조의 『귤림당중수기(橘林堂重修記)』에는 “이 땅에 귤명(橘名)된 국과원(國果園)이 모두 36곳인데, 홀로 이 귤림당만이 연희각 가까이에 있다. 입추(立秋) 이후가 되면 서리가 내려서 많은 알갱이가 누렇게 익는다. 공무를 보는 여가에 지팡이를 짚고 과원을 산책하노라면 맑은 향기가 코를 찌르고, 가지에 열매 가득한 나무들을 쳐다보노라면 심신이 다 상쾌해진다”고 귤림당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귤림당은 거문고를 타고 바둑을 두거나 시를 지으며 술을 마시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변천]
창건 연대는 불분명하지만, 중수는 여러 차례 행해졌다. 1743년(영조 19)에 제주목사 안경운(安慶運)이 중수했다는 기록이 『탐라지초본』에 “연희각 동쪽 과원 안에 있는데 제주목사 안경운이 고쳐 세웠다”고 되어 있다. 1769년(영조 45)에 중수하였고, 1842년(헌종 8)에 제주목사 이원조가 다시 중수하였다.
현대에 이르러 1991~1998년에 제주시가 네 차례의 발굴 조사를 통해 문화층과 문헌상에 나타난 귤림당의 건물터와 유구를 확인하였다. 1999년에는 제주목 관아 복원을 위해 제주시민들에게 기와 5만여 장을 헌와받아 복원에 착수해 2002년 12월 완성하면서, 연회장으로 쓰이던 귤림당도 복원되었다.
[형태]
복원 사업이 이루어진 귤림당의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 공포는 초익공 홑처마에 사모지붕이며, 면적은 9㎡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