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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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內里遺蹟 |
영어음역 | Gonae-ri Yujeok |
영어의미역 | Archaeological Site in Gonae-ri |
이칭/별칭 | 고내리 생산 유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물 산포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650-4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강창화 |
성격 | 생산 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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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650-4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탐라 후기의 생활 유적.
[위치]
고내리는 제주도 서북부 해안을 끼고 동서 방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고내리의 유물 산포지가 확인되는 지점은 마을 동편에 위치한다. 유적의 범위는 약 10,000여 평에 이른다. 고내리 유적의 가장 남쪽 부분에는 고인돌 1기가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고내리 유적은 1994년과 1995년 애월~신창 간 국도 12호선 확장 공사로 인해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면적은 2,000평에 이른다. 조사 결과, A구역에서 황갈색 생토면을 파고 들어가 시설한 크고 작은 구덩이 유구가 다량으로 밀집되어 확인되었다.
이 구덩이 유구는 서쪽의 자연적으로 형성된 도랑과 북쪽의 인위적으로 파고 들어간 높이 1m의 단애면을 경계로 하여 그 내부에 밀집되어 나타난다.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구덩이 유구의 범위는 동서 64m, 남북 52m 정도이다.
[형태]
구덩이 유구는 크게 직경 2~3m 이상의 대형과 직경 1~1.5m 내외의 소형으로 나뉜다. 대형은 5가지 유형으로 세분된다.
제1형식(La형)은 평면 형태가 타원형이며, 내부 토층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며 흑색 재층과 붉은 소토 덩어리로 채워져 있는 구덩이 유형이다. 이 구덩이 주변에서는 흑색 재층, 붉은 소토 덩어리가 폐기되어 있고, 덜 성형된 토기편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토기 생산과 관련된 야외 요지일 가능성이 짙다.
제2형식(Lb형)은 평면 형태가 일정한 정형 없이 불규칙하며, 흑갈색 부식토로 채워져 있고, 유물이 거의 없는 구덩이 유형이다. 어떤 일정한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판단되나, 발굴한 구덩이 중 그 용도가 가장 불확실한 구덩이이다. 다만, 구덩이 바닥의 점토가 양질인 점으로 보아 점토를 대대적으로 채취했던 구덩이로 추측된다.
제3형식(Lc형)은 평면 형태가 불규칙하며, 덜 소성된 토기편과 불에 탄 붉은 점토 덩어리로 이루어진 구덩이 유형이다. 이 구덩이의 소토층은 20~40㎝ 두께를 보이고 대부분 다른 구덩이와 중복되거나 소토층이 다른 구덩이의 상면을 덮고 있다. 제1형식의 구덩이와 관련되어 토기 제작 후 남은 소토를 폐기한 소토 폐기 구덩이로 판단된다.
제4형식(Ld형)은 평면 형태가 원형이고, 구덩이 깊이가 1.5m 이상 되며, 내부 벽에 작은 구멍이 일정한 간격으로 돌려져 있는 구덩이 유형이다. 이 구덩이에서 확인되는 벽체의 작은 구멍은 구멍간의 대칭 관계가 일정하게 나타난다. 이는 곡물을 저장한 후 나무 막대를 서로 얽어 놓아 덮개를 얹은 형태의 곡물 저장 구덩이로 여겨진다. 이 구덩이 주변에서 다량으로 확인된 탄화 곡물이 이러한 사실을 입증해 준다.
제5형식(Le형)은 평면 형태가 장타원형이며, 흑갈색 부식토로 채워진 30㎝ 내외의 깊이에 완형 토기가 겹겹이 놓여 있는 구덩이 유형이다. 적갈색 심발형 토기 완형 30여 점이 서로 엇갈려 가지런히 놓인 채로 확인되었다. 토기 저장 구덩이로 추정된다.
소형 구덩이는 이러한 대형 구덩이 주변에서 확인된다. 소형 구덩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제1형식(Sa형)은 평면 형태가 원형이고 단면은 원통형이며, 깊이가 50㎝ 이상 되며, 바닥에서 완형 토기와 탄화 곡물이 출토되는 구덩이 유형이다. 이 구덩이는 구덩이 벽체를 파고 들어간 기술이 정교하고, 단면상으로 상협하광(上狹下廣)을 취하고 있다. 이 주변에서는 다량의 토기편과 탄화 곡물 등이 확인되는 것을 볼 때, 소형 저장 구덩이로 해석된다.
제2형식(Sb형)은 평면 형태가 타원형에 가깝고, 내부벽은 굴곡이 매우 심하게 나타나며, 유물이 상층에서만 확인되는 구덩이 유형이다. 내부 벽의 요철 현상은 위에서 아래로 파고 들어간 흔적이 뚜렷하다. Lb형의 구덩이보다 좀더 양질의 점토를 채굴했던 소형 구덩이로 판단된다. 이 구덩이 상층에서 확인되는 유물은 구덩이 폐기 후 혼입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구덩이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양상은 대형 구덩이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소형 구덩이가 밀집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개개의 구덩이가 단일 구덩이로 시설된 것이 아니라, 당시 생활지 내에서 일정한 목적에 의해 여러 용도의 구덩이가 군을 이루어 존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대부분의 구덩이들이 평면적·층위적으로 중복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출토유물]
A구역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된 유물은 제주산 적갈색 토기이다. 이 적갈색 토기는 그 형태에 따라 심발형·사발형·컵형으로 세분된다. 이 밖에 이형 토기도 출토된다. 심발형 토기는 고내리식 토기로 명명된 토기이다. 기벽의 두께가 1㎝ 미만이고 저부를 따로 만들어 동체와 부착하였으며, 바닥과 구연부 직경이 거의 같은 비율로 제작된 토기이다. 이 적갈색 토기는 통일신라시대 또는 탐라시대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토기 외에 새롭게 확인된 기종으로 사발형 토기·잔형 토기·소형 컵형 토기·꼭지가 달린 소형 토기·이형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 시대의 제주도산 적갈색 토기가 다양한 기종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유물들과 함께 구덩이 내부에서 8세기 중반 이후에 유행한 통일신라시대 후기 토기인 회색 도기가 적은 양이나마 적갈색 토기와 공반 출토되었다. 그 기종은 반구단경병(盤口短頸甁)·장경병(長頸甁)·사각병·편병·주름 무늬 소형병·돌대 무늬 대호 등이 있다. 이 토기는 남한계 회색 도기와 기형이 같고 제주도 태토가 아닌 점으로 미루어 수입된 그릇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들 적갈색 토기, 회색 도기와 공반하여 해무리굽 청자·청동제 사발·납석제 곡옥·유리 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그 밖에 낫·소형 도끼·화살촉 등의 철제품이 확인되었다. 또한 A1구역의 구덩이 내부에서 콩과 보리로 여겨지는 다량의 탄화 곡물이 확인되었다.
이 밖에 A1·2구역 상층(1층)에서 고려 초기 순청자편·고려 말기 청자편·연화문 수막새 등이 다량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C구역 담장지에서는 고려 말기 청자편·조선 초기 분청 사기편·‘고내촌(高內村)’명 평와 등이 확인되었다. 이곳에서는 특히, 원대(元代) 자기와 함께 북송대(北宋代)의 희령원보(熙寧元寶: 1068~1077년)와 소성원보(紹聖元寶: 1094~1097년) 등의 화폐 유물도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고내리 유적의 구덩이는 크게 대형 구덩이와 소형 구덩이로 나뉜다. 대형 구덩이 중 La형은 토기 제작과 관련된 야외 요지, Lb형은 점토 채굴 구덩이, Lc형은 토기 제작과 관련된 소토 폐기 구덩이, Ld형은 곡물 저장 구덩이, Le형은 토기 저장 구덩이로 여겨진다. 반면에 소형 구덩이 중 Sa형은 소형 곡물 저장 구덩이, Sb형은 소형 점토 채굴 구덩이로 추정된다.
특히, La형의 구덩이는 내부 토층에 소토층이 반복되고, 폐기된 소토 덩어리가 구덩이 상면을 덮고 있으며, 내부와 주변에 덜 성형된 토기편이 흩어져 있다. 이는 토기 생산과 관련된 야외 요지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구덩이는 일본 토사기(土師器) 야외 요와 유사성을 갖고 있어 주목된다.
또한 Sa형의 소형 구덩이는 몽촌토성 내 건물지 주변에서 확인되는 저장공에서 이와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Sb형의 소형 구덩이는 ‘점토토항(粘土土抗)’이라고 해서 일본 다마(多摩) 유적의 예가 있다. 그러나 확실하게 점토 채굴 구덩이로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결국, 이러한 구덩이들은 아직 주거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생활지 내의 유구로 판단된다. 크게 토기 생산과 곡물 저장이라는 용도로 사용된 구덩이들로 추정된다.
이러한 구덩이 유구의 시기는 고내리식 토기와 공반하여 출토되는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유행한 회색 도기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출토된 회색 도기는 반구단경병·사각병·일면편병·주름무늬병 등이 확인되며, 이 유물은 대체로 8세기 중반에서 9세기대에 해당된다.
이 밖에 A구역 상층에서 노출된 적석 유구와 기와 매립층, C구역에서 확인된 담장지에서는 대체적으로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초에 해당하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제주도의 고문헌인 『탐라지(耽羅志)』에 의하면, 고려 충렬왕 때 현 제주시에 있는 대촌현(大村縣)을 비롯한 여러 현촌 중에 고내현(高內縣)이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노출된 고려시대 유구는 현청지(縣廳址) 또는 구전으로 전하는 고내사지(高內寺址)와 관련된 시설물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