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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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敬信齋 |
영어음역 | Gyeongsinjae |
영어의미역 | Gyeongsinjae Shrin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142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동전 |
성격 | 유학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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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1875년 |
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1421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1875년(고종 12) 제주목사 이희충(李熙忠)에 의해 창건되어 선비들이 유교 경전을 공부하며 서로 교류하던 장소.
[개설]
이희충이 기록한 『경신재섬학전(敬信齋 贍學錢)』 「절목(節目)」에는 “이 재에는 월봉이 지극히 박해서 해마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므로 약간의 세금을 거두어서는 지출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접(接)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조처가 있어야만 되겠다.
선비들이 하는 말에 따르면 대림(한림읍 대림리) 경에 한 필지의 밭이 있는데 값이 200금이 된다고 하나 거기서 나오는 세는 불과 1년에 2냥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에 이 밭을 팔아서 이자를 늘린다면 매년 수입금이 40냥이 된다.
그러면 세를 받아들일 때보다 스무 배나 되어 공부하는 선비들의 수요에 보탬이 될 수 있으므로 여러 사람이 원하는 바에 따라 200냥을 예치하고 이 절목을 만들어서 오래도록 준행케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경신재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당시 선비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위치]
[현황]
귤림서원 자리에 있던 경신재는 훗날 제주공립농림학교의 부지로 편입되었다. 도시 개발로 지금은 위치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제주 선비들이 모습을 짐작케 해주는 이희충의 기록이 남아 있어 보다 충실한 자료를 추적하여 제주 선비들의 모습을 그려내 보는 것도 의의 있는 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