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0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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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康寬順 |
영어음역 | Kang Gwansun |
이칭/별칭 | 강철(康哲)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연평리 929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강순원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우도에 있는 사립 영명의숙(永明義塾) 4년 과정을 마치고, 1926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영명의숙 교사로 재직하면서 계몽극을 만들어 공연하고 야학에서 문맹 퇴치 운동을 하였다.
1931년 3월 조선공산당원 신재홍(申才弘)·오문규(吳文奎)·문도배(文道培)·김시곤(金時坤)·김성오(金聲五) 등과 함께 사회주의 항일 단체인 혁우동맹(革友同盟)을 결성하였다.
1931년 6월 신재홍의 권유로 제주도 야체이카(사회주의 운동의 세포 조직)의 당외(黨外) 기관원으로 가입하였다. 또한 김성오와 함께 고자화(高子華) 집에서 고봉준(高奉俊)·고원한(高元瀚)과 회합하여 적(赤)이라는 당외 기관을 만들었다. 당시 강관순은 연락부원, 김성오는 청년부원, 고원한은 여성부원, 고자화는 농민부원을 맡았다.
1932년 1월부터 구좌읍에서 해녀항쟁이 일어나면서 비밀 결사가 탄로되어 관련자들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당시 체포된 인물은 강관순을 비롯하여 김성오·신재홍·우봉준(禹奉俊)·이두삼(李斗三)·고자화·정찬식(鄭贊植)·공덕봉(孔德奉)·고기창(高基昌)·강희준(姜熙俊)·양봉윤(梁奉潤)·윤대홍(尹大弘) 등이었다.
1933년 2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아 항소하였고, 1933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일제의 감시를 피해 만주로 갔다가 고문 후유증과 옥중에서 얻은 병으로 1942년 청진에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옥중에서 「해녀의 노래」를 작사하였다. 「해녀의 노래」는 항일 운동가(運動歌)로 널리 불리었을 뿐만 아니라 제주 전역과 다른 지방에 나간 해녀들에 의해서 전국적으로 보급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상훈과 추모]
2005년 3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으며, 1996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우도의 선착장에 시비(詩碑) 「해녀의 노래」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