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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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監牧官金氏宅 |
영어음역 | Gammokgwan Kimssi Daek |
영어의미역 | House of Kim, Officer of Stock Farm Management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집필자 | 현용준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감목관 벼슬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감목관 김씨댁」은 조선 중기인 1600년(선조 33) 말 오백 필을 조정에 헌납하여 헌마공신(獻馬功臣)으로 감목관(監牧官)이 된 김만일(金萬鎰)의 이야기이다. 당시 김만일은 남원읍 의귀리에서 살았는데, 제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말을 많이 키우던 말부자였다고 전한다.
[내용]
김만일이 어렸을 때 당시 제주목사가 김만일의 조상 묏자리를 보아 주기 위해 의귀리의 산 쪽 ‘반데기’란 곳으로 갔다. 이곳에서 하나 보아 준 자리가 제주 칠대혈(七大穴) 중의 하나라고 한다. 제주목사가 정해 준 자리에 장사를 지내고 얼마 후 김만일은 장가를 들었는데, 처가에서 수말 한 필을 물려 주었다.
김만일은 수말을 들판에 풀어 놓고 자주 보러 다녔다. 하루는 이 수말이 암말 백 여 필을 거느리고 왔는데, 모두 처가의 말들이었다. 김만일은 여러 번 이 암말들을 쫓아 돌려보냈으나 자꾸 수말이 가서 암말들을 거느리고 왔다. 그리하여 처가에서도 할 수 없어서 그 암말들을 사위에게 주었는데, 이 말들이 새끼를 낳고 낳고 하여 수천 마리가 되었다.
어느 해, 김만일은 말 오백 필을 나라에 바치고 그 공으로 감목관 벼슬을 하였는데, 그후에도 여러 대에 걸쳐 말을 나라에 헌납하여 감목관 벼슬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말부자가 되어 벼슬을 한 것은 모두 반데기의 좋은 명당 자리에 묘를 썼기 때문이란다.
[모티프 분석]
「감목관 김씨댁」은 대대로 감목관 벼슬을 하였던 경주김씨 집안의 내력담이기도 한데, 역사적 사실이 명당 발복이란 모티브와 결합하여 민담으로 정착,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