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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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25烽燧 |
영어음역 | 25 Bongsu |
영어의미역 | 25 Beacon Fire Station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명철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전기 통신 시설.
[개설]
『경국대전』에 의하면 봉수제(烽燧制)의 ‘봉’은 불을 피워서 통보하는 것을 뜻하고, ‘수’는 설나무에 불을 질러서 그 연기를 바라보게 하는 것으로서,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들어 통보하는 제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봉수제는 우역제(郵驛制)와 함께 신식 우편 제도와 전기 통신이 창시되기 이전의 근대 국가에서는 가장 중요한 군사용 통신이었다.
중국의 주(周)나라에서 유래된 봉수제는 삼국시대 초기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초기의 기록에 봉화와 관련된 지명과 봉화를 올렸다는 내용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봉수제가 처음으로 법제화된 것은 고려시대에 이르러서였다. 1149년(의종 3)에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 조진약이 올린 장계(狀啓: 왕명을 받고 지방에 나가 있는 신하가 자기 관하의 중요한 일을 왕에게 보고하던 일, 또는 그 문서)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봉수식을 정하여 평상시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를 각각 하나로 하고, 2급 비상이면 둘, 3급 비상이면 셋, 4급 비상이면 넷을 올리도록 하고, 각 봉수대에는 방정(防丁) 2명과 백정(白丁) 28명을 배치하되 그들에게 평전(平田) 1결씩을 지급토록 하고”라고 되어 있다.
1419년(세종 1)에 이르면 전승되어 온 고려의 봉수제를 바탕으로 당나라의 제도를 참고하여 거화거수(擧火炬數) 등의 관계 규정을 정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각 지방 해안의 봉수와 연대를 새로이 축조하고, 봉수의 선로를 일제히 획정하였다. 즉 별 일이 없을 때는 1개, 적이 해안에 나타나면 2개, 해안에 가까이 오면 3개, 우리 병선과 접전시에는 4개, 상륙시에는 5개를 올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주도의 봉수 중 제주목에 소속된 봉수는 사라봉수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원당봉수↔서산봉수↔입산봉수↔왕가봉수에서 정의현의 지미봉수가 있고, 서쪽으로는 사라봉수←도원봉수↔수산봉수↔도내봉수↔고내봉수↔만조봉수에서 대정현의 당산봉수와 상응한다. 정의현 소속 봉수는 지미봉수↔수산봉수↔독자봉수↔남산봉수↔달산봉수↔토산봉수↔자배봉수↔예촌봉수↔삼매양봉수와 대정현의 구산봉수와 상응한다. 대정현 소속 봉수는 구산봉수↔호산봉수↔저별봉수↔모슬봉수↔당산봉수가 상응한다.
1439년(세종 21) 제주도안무사 한승순이 올린 장계에 의하면 제주에는 봉수가 22개소 설치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제주목에 10개소, 정의현에 7개소, 대정에 5개소였다.
그 후 봉수와 연대에 대한 정비가 이루어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제주 지역 전체 봉수는 23개소로, 제주목에 8개소, 정의현에 10개소, 대정현에 5개소가 설치되었다. 또한 봉수는 높은 산정에 위치하고 있다며 구체적으로 설치된 봉우리(오름)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
또한 17세기에 기록된 『탐라지(耽羅誌)』에 따르면 제주 지역 전체 봉수는 25개소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제주목에만 2개소가 증설되었다. 그 후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탐라방영총람』의 기록에서 비로소 봉수와 연대가 구분되었는데 봉수 24개소, 연대 37개소가 설치되었다고 나와 있다.
정조 때 편찬된 『제주읍지』에는 정의현의 수산봉수와 종달연대가 설치됨에 따라 제주도 내에 봉수가 25개소, 연대가 38개소 정비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봉수와 연대는 명칭만 다를 뿐, 25봉수와 38연대로 유지되다가 1811년(순조 11)에 연대 8개소가 폐쇄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는 모슬봉수와 8개의 연대가 폐쇄되어 제주에는 24봉수와 30연대가 유지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건립경위]
봉수는 역마(驛馬)나 인편보다는 시간을 단축시켜 주었다. 신속한 효용성을 발휘하여 지방의 급변한 민정 상황이나 국경 지방의 적의 동태를 상급 기관인 중앙의 병조에 연락하였던 봉수제는 국가의 정치·군사적인 정보를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형태]
제주도 오름의 정상부에 위치한 봉수는 이중 둑으로 원형 토축한 것이 기본 모델이다. 제주도 내 25개 봉수 중 형태 확인이 가능한 것은 17개소이고, 이중에 15개소는 원형이고, 2개소는 방형에 가깝다. 형태가 원형인 15개소 중 10개소가 이중의 둑으로 축조되었는데, 이는 우천시 배수를 고려하여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봉수대의 축조 재료는 왕가봉수·성산봉수·자배봉수는 석축이고, 구산봉수는 흙과 돌을 혼용하였고, 나머지 13개소는 토축이다. 이는 봉수가 오름의 정상에 위치하여 석재를 구하기 힘들고, 변방의 최전방에 있는 연대와는 달리 멀리서 망을 보고 연락하는 내지봉수의 기능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봉수의 규모는 외단은 직경이 작은 것은 9.4m, 큰 것은 45m이고, 내단은 직경 5.4~30m로 자연 지형에 따라 크기를 달리했다.
[의의와 평가]
제주도 내 높은 산(오름)의 정상부에 위치한 봉수는 봉수와 봉수, 혹은 연변봉수와 상응하는 내지봉수와 경봉수의 기능을 담당하는 등 제주 지역의 관방 시설을 연구하는 중요한 학술적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