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군대 해산 후에 제천에서 활동하던 의병의 주력 부대가 1907년(순종 1) 말 북상하고, 이후 일본군 수비대와 맞서는 의병 활동이 소백산 일대를 중심으로 전개될 무렵 일본군은 의병들의 ‘귀순’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한편, 의병 및 의병 협조자들에게 강력한 탄압을 가하였다. 김윤학(金潤學)[?~1908]은 1908년(순종 2) 1월 초 제천시 봉...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민영팔(閔泳八)[1870~?]은 단양 현곡리에서 살았으며, 을미의병 당시 의병을 일으켜 제천·청풍 등지에서 수차례에 걸쳐 적과 싸우다가 1896년(고종 33) 11월 홍주에서 잡혀 진도로 유배되었다. 1907년(순종 1) 국채 보상 운동에 참여하였고, 정미 의병 때 단양에서 이명상(李明相)과 함께 포군을 조직하여 의병을 일으켰으며, 이명상·...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백학선(白鶴善)[?~1908]은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제위에서 물러나고 군대가 해산된 이후 의병 운동에 뛰어들었다. 게릴라전을 통하여 일본군과 접전하고 군수 물자를 수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8년(순종 2) 5월 6일 청풍의 방흥동[현 제천시 청풍면 방흥리]에서 25명의 부하와 함께 숙영하다가 충주 수비대의 습...
개항기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경보(敬甫), 호는 신당(愼堂). 아들로 임병필이 있다. 임의상(林宜常)[1854~?]은 제천군 길고개[현 제천시 왕암동]에 살았다. 이소응(李昭應)이 주도하는 장담 강회에 출입하며 의병론자들과 뜻을 같이하였고, 1904년(고종 41) 말에는 유인석(柳麟錫)의 지시에 따라 일진회를 견제하기 위해 시행하였던 제...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장. 정연철(鄭淵哲·鄭蓮哲·鄭連哲)은 대한제국 군대의 상등병 출신이다. 1907년(순종 1) 군대 해산 이후 이강년(李康秊) 부대에 참여하여 후군장·우익장 등 전투 부대장을 맡았다. 12월 16일 영춘 복상골 전투 이후 의진이 북상하자 중군장 김상태(金尙台) 진영과 함께 뒤에 남아 영춘 지역의 소백산 일대를 중심으로 봉화 방면으로 진출하여 계속 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