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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권기수(權夔洙)[?~1896]는 본관이 안동(安東)이며, 교관(敎官) 출신이다. 호좌의진이 1896년(고종 33) 5월 제천의 남산 전투에서 관군에게 패한 후, 유인석(柳麟錫)을 따라 서북 지방으로 이동하는 서행(西行)에 참여하였다. 이때 서행하려던 의병 측은 화서학파의 중요한 근거지인 서북 지역에 미리 유치경(兪致敬)과 이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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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권도연(權道淵)[1886~1910]은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1908년(순종 2) 여름 이강년(李康秊)이 체포된 이후, 이강년의 뒤를 이어 호좌의진을 이끈 김상태(金尙台)의 휘하에서 주요 간부로 활동하였다. 주로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접경지대인 소백산 일대에서 전개된 일본군 토벌대와의 전투에서 활동하였다. 1910년 3월 초 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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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과 이범윤 의진의 의병. 김교헌(金敎憲)[?~1908]은 단양군 영춘 출신으로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한 관료이었으며, 1895년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이 지도하는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다. 처음에는 전군장인 정운경(鄭雲慶)의 종사관으로 활동하다가, 후에는 제천 의병을 치러 오는 관군이 출동하였을 때 원주 신림 쪽을 방어하는 파수장으로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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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백선(金伯善)[1873~1896]은 지금의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갈운리에서 태어났다.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 운동 당시 맹영재가 조직한 포수 부대에 참여하여 농민군을 진압할 때 공을 세워 조정에까지 이름이 알려지고 절충장군의 첩지까지 받았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지자 지평군수 맹영재에게 의병을 일으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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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경은(景殷·敬殷), 호는 경암(敬菴). 서상렬(徐相烈)[1854~1896]은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며, 무과에 급제한 무인 출신이다. 임오군란 후 묄렌도르프가 등용되는 것을 보고 벼슬에 뜻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김평묵(金平默)의 문하에 나아갔다가 이후 제천으로 낙향한 뒤 장담마을로 이주하여 유중교(柳重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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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계현(啓賢), 호는 하사(下沙·夏史). 아버지는 화서학파와 교류하던 지평의 선비 안종응(安鍾應)이다. 안승우(安承禹)[1865~1896]는 동향의 화서학파 학자인 이근원(李根元)에게 배우다가 이근원의 스승인 유중교(柳重敎)를 찾아가 학문을 익혔다. 장담(長潭)에서 강학하던 유중교가 별세한 이후로는 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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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원주(原州). 초명은 원용석(元容錫), 자는 복여(復汝), 호는 삼계(三戒). 원용팔(元容八)[1862~1906]은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이호(梨湖)에서 무장의 후예로 태어났으며, 이근원과 유중교(柳重敎)에게 나아가 배웠고 장담에도 드나들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의병이 일어날 때 여주에서 봉기한 심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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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군서(君瑞), 호는 회당(晦堂). 윤응선(尹膺善)[1854~1924]은 학행(學行)으로 이름이 높아 1889년(고종 26)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주역』를 공부하던 40세에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를 만났다. 윤응선은 본래 양평 출신인데, 병인양요 이후 조부를 따라 청풍 장선으로 이주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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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한여(翰汝)·효백(孝伯), 호는 명와(明窩). 이기진(李起振)[1869~1908]은 충주의 하곡[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서 태어났다. 유중교(柳重敎)·유인석(柳麟錫)에게 배웠으며, 을미 의병 당시 홍선표(洪選杓)·정화용 등과 함께 유인석의 종사로 활약하였다. 충주성 전투와 제천에서 패한 후 서행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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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문약(文若)·명칠(命七), 호는 소산(小山). 이완하(李完夏)는 단양에서 살았다.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 장의장에서 활동하였다. 장의장은 단양 지역의 의병으로 조직된 의병 부대를 일컫는데, 장림(長林)에 주둔하여 적을 방어하였다. 호좌의진의 중군장으로서 의진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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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평창(平昌). 자는 치심(致心), 호는 항재(恒齋)·옥산(玉山). 이정규(李正奎)[1865~1945]는 본래 소론 집안인 탓에 송시열의 학문을 대단하지 않게 보았는데, 우연히 『송자대전(宋子大全)』을 보고 감복한 것이 계기가 되어 ‘존화양이(尊華攘夷)’를 주장하는 화서학파에 입문하게 되었다. 안승우(安承禹)와 만나 의기투합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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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기중(紀中), 호는 관의재(寬毅齋). 이조승(李肇承)[1873~1900]은 제천시 한수면 북노리에 살았다. 일찍이 이인구(李寅龜)·지운상(池運象) 등에게 배웠고, 나중에 유중교(柳重敎)가 장담으로 내려오자 그 문하에 들어가서 배움을 청하였고 유치원(兪致元)에게도 배웠다. 유중교가 세상을 뜬 후에는 유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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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우삼(友三), 호는 괴은(槐隱). 이춘영(李春永)[1869~1896]은 지평[현 경기도 양평군] 출신이다. 유중교(柳重敎)에게 직접 배우지는 않았으나 그의 척사 사상에 심취하였다고 한다. 이춘영에 대해서는 이념 지향적이었던 제천 의병의 지도부 속에서 예외적으로 실무적인 지도자였고, 일본의 포위망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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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본명을 숨기고 춘삼(春三)이라는 이름을 썼다. 이필익(李弼翼)[?~1896]은 단양 평동 출신으로,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을 때 진압에 앞장섰다. 을미의병 당시 서상렬(徐相烈)을 따라 영남으로 나아가 병력을 소모하였고, 단양 영춘 지역에서도 모병 활동을 하였다. 풍기의 백천에서 모병 활동을 하던 중 소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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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만여(萬汝), 호는 실곡(實谷). 이필희(李弼熙)[1857~1900]는 단양의 품달과 여주에 살았다. 무인 집안 출신이었으나, 유중교(柳重敎)를 만난 후 유학에 전념하였다. 을미년(1895)에 단발령 조치가 내려진 후 장담에서 처신을 두고 의병을 일으킬 것인가, 망명할 것인가, 자결할 것인가를 두고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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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수겸(受謙), 호는 중재(中齋). 아버지는 호좌의진에서 선비들을 맞아들이는 직책인 사객(司客)이었던 장충식(張忠植)이다. 장익환(張益煥)[1866~1915]은 단양의 상진에 살았다. 유중교(柳重敎)의 제자인 이근원의 제자이다. 단발령 이후, 단양에서 의병을 준비하던 중 이춘영(李春永) 등이 봉기하여 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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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사이(事以), 호는 열은(洌隱). 아들로 단양 민병장과 장의진의 중군을 역임한 장익환(張益煥)이 있다. 장충식(張忠植)[1836~1901]은 단양 출신이다. 임오군란 때 민겸호가 피살되자, 그의 집에 출입하던 의리를 지켜 홀로 시신을 수습하였다고 한다. 선공감 감역관, 사헌부 감찰 등의 직책을 받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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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정병철(鄭炳喆)의 자는 수봉(壽鳳)이다. 평민 출신의 의병으로 능력을 크게 인정받은 경우이다. 단발령 이후에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영남 지방에 소토장으로 파견한 서상렬(徐相烈)의 휘하에서 중군 참모로 활동하였다. 좌부장(左副長)으로 제천 본진과 연락을 담당하였고, 조령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유격장 이강년(李康秊) 휘하에서 부총(副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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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중덕(仲德·重德), 호는 소송(小松). 정술원(鄭述源)[1860~1931]은 많은 의병론자를 배출한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 출신으로,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제천에서 활동할 때 대장 종사로 활약하였다. 1905년(고종 42) 초 유인석의 지시에 따라 일진회를 제어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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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이필희 의진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해사(海史). 조준교(趙駿敎)[?~1896]는 청풍 출신으로 담론을 잘하고 글도 많이 읽은 호걸풍의 인물이었다고 한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진 이후에 지평[현 경기도 양평군] 출신의 포군을 바탕으로 구성된 의병 부대가 제천으로 들어와서 이필희(李弼熙)를 대장으로 추대하면서 새 출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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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조후룡(趙後龍)은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의 대표적 평민 출신 의병이다. 중군 안승우(安承禹) 친척 집안의 하인이었다고 하는데, 수안보 전투에서 이춘영(李春永)이 전사하였을 때 배시강과 함께 시신을 운구해 왔다. 후에 안승우의 지시를 빙자하여 김백선(金伯善)의 군사가 경작하던 논을 빼앗아 중군장 안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