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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고려 시대 제천 지역은 내제군(奈堤郡)에서 제주(堤州)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11세기에는 원주목과 충주목으로 갈라져서 속하게 되었다. 고려 시대 잦은 외세의 침입은 제천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충주와 제천 사이 지역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내제군을 제주로 바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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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천에서 거란병을 크게 무찔러 격퇴한 무신. 본관은 언양(彦陽). 아버지는 신라 경순왕의 일곱째 아들인 언양군(彦陽君) 김선(金鐥)의 후손 예부 시랑(禮部侍郞) 김부(金富)이다. 김취려(金就礪)[1172~1234]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에서 태어났다. 음관(蔭官)으로 정위(正尉)에 임명된 뒤 동궁 위(東宮尉)를 거쳐 장군(將軍)으로서 동북계(東北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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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년부터 1259년까지 7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한 몽골에 맞서 충청북도 제천 지역을 포함한 전역에서 일어난 항쟁. 7차례에 걸친 몽골의 침입 중 5, 6, 7차 침입 때 몽골군이 충청북도 충주와 제천 지역까지 공격해 왔다. 고려의 최씨 무신 정권이 안정되어 가던 13세기 초 몽골족이 금을 대신하여 대륙을 지배하게 되었다. 칭기즈칸은 북중국을 장악한 후 남송과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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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와 백운면 모정리에 걸쳐 있는 산. 박달산(朴達山)의 박달은 밝음, 새벽, 빛을 뜻하는 밝달에서 유래된 낱말로 알려져 있다. 또한 박달재에서 따온 명칭으로 보아 「박달도령과 금봉낭자 전설」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고려사(高麗史)』에 이미 박달현(朴達峴)에서 최원세(崔元世)와 김취려(金就礪)[?~1234]가 거란병을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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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모정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격전지. 1216년(고종 3)에 거란 왕자가 대요수국 왕이라 자칭함에 따라 몽고군에게 쫓기게 된 거란대군 10만 명이 내침을 하였다. 1217년(고종 4) 7월 고려군은 김취려(金就礪) 장군의 휘하에 박달재의 협곡과 고갯마루의 지형을 이용한 전략으로 적군을 협공으로 퇴각시켰다. 이후 1258년(고종 45)에 몽고군이 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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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년 박달재 부근에서 벌어진 고려군과 거란군의 전투. 고려는 국초부터 요(遼)나라를 세워 한때 중국의 북부 지역을 지배하던 거란족을 적대시하였다. 이로 인해 고려는 몇 차례에 걸쳐 거란족의 침입을 당하였으나 그때마다 물리쳤다. 1217년(고종 4) 봄 3만 요의 대군이 쳐들어왔고, 그 한 갈래가 동쪽으로 남하하여 철원·춘천을 거쳐 원주마저 장악하였다. 조정에서는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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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있는 흙이나 돌로 축조된 전통 시대 방어 시설. 성곽(城郭)이란 보통 성(城)을 뜻하지만 내성(內城)과 외곽(外郭)을 함께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적의 침입이나 자연적인 재해로부터 성안의 인명과 재산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인위적 시설을 말하는 총체적인 개념이다. 여기에는 성벽뿐만 아니라 성벽 밖에 설치된 해자 등의 시설, 성벽에 설치된 각종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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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와 백운면 모정리에 걸쳐 있는 산. 조선 말 제천현 근남면에 속한 소시랑리(小始朗里) 마을 뒤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소시랑(小始朗)의 ‘시랑(始朗)’이 ‘시랑(侍郎)’으로 바뀌어 표기된 것이다. 이외에도 ‘소(蘇)’씨 성을 가진 사람이 ‘시랑(侍郞)’ 벼슬을 하여 생긴 지명이라는 말도 전한다. 하지만 ‘소시랑’은 ‘쇠스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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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역리 충주댐 수몰 지역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황강역(黃剛驛) 터. 고려 시대 평구도에 속한 황강역은 조선 시대 황강역(黃江驛)으로 변천하였으며, 황강도(黃江道)에서 독립적으로 관할한 역은 6개소로 제천, 단양, 영춘 일대를 관장하였다. 황강역은 경상도 및 충청도와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역으로 발전한 교통의 중심지로서 연원도에 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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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역사와 문화. 전통 시대 제천 지역은 제천과 청풍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렇게 나누어진 지역 사회는 삼국 시대 이래 정치·경제·문화적인 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이후 1980년 제천시로 통합되면서 지역 사회는 뚜렷한 정체성을 각인시키면서 활동 무대를 점점 확장하고 있다. 제천 지역은 강줄기를 따라 혹은 점말동굴로 알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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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왜구가 충청북도 제천 일대에 침입한 사건. 일찍부터 한반도의 연안 지역을 간헐적으로 약탈하던 왜구의 침입은 고려 말에 이르러 그 규모와 강도가 더해졌다. 14세기 중엽에는 100~500척의 선단을 이끌고 내륙 지역까지 쳐들어와서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는데, 우왕(禑王) 재위 때는 제천·단양·영월 등지까지 들어와서 고려군과 접전을 벌였다. 고려 후기에 일본은 중앙 권력이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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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재는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제천에서 충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교통의 요지여서 대외 항쟁사 등 역사의 중요할 길목마다 주목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풍부한 주변의 역사성 때문에 교통로가 아닌 관광 자원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박달재는 흔히 천등산 박달재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박달재는 정확히 말해서 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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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와 덕산면 월악리, 수산리에 걸쳐 있는 월악산의 주봉. 월악산은 1984년 12월 31일 건설부 고시 제565호로 월악산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동식물과 자연 환경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자연 문화유산이다. 신라 시대에는 월형산(月兄山)으로 불리었으며 소사(小祀)를 지냈다. 풍수상 음기가 강한 여성 산이라 한다. 주봉인 월악영봉(月岳靈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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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리는 제천시 한수면의 면소재지다. 한수면사무소는 원래 제천시 한수면 황강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충주댐 공사로 인해 1984년 6월 송계리로 이전하였다. 제천에서 충주 수안보 방향으로 청풍호를 끼고 가다가 월악교가 보이는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월악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산자락에 송계리가 위치한다. 또 충주 수안보에서 제천 방향으로 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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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초명은 유반(柳潘), 호는 벽은(僻隱). 고려의 멸망 과정에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등과 함께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고, 이때 초명을 버리고 유번(柳蕃)으로 개명하였다. 아버지는 유지택(柳之澤)이다. 후손으로 청풍 출신의 효자로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에 기록된 유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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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수주(樹州). 자는 직청(直淸). 개국공신 이희목(李希穆)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시중 이정공(李靖恭)이다. 형으로 참지정사(參知政事) 이숙(李璹)이 있고, 임원후(任元厚)의 딸인 인종의 비(妃) 공예 태후(恭睿太后)의 외할아버지이다. 이위(李瑋)[1049~1133]는 문과에 급제하고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을 거쳐, 1087년(선종 4) 상서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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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시대부터 고려 전기까지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던 내제군의 영현.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의 내제군(奈堤郡) 항목에 “영현(領縣)이 둘인데, 청풍현(淸風縣)은 본디 고구려의 사열이현(沙熱伊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바꾸어 지금까지 그대로 쓰고, 적산현(赤山縣)은 본디 고구려의 현인데 경덕왕이 그대로 사용하였고 지금의 단산현이다[本高句麗奈吐郡 景德王改名 今堤州 領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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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1413년까지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던 행정 구역. 고려는 남북국 시대를 통합하고 940년(태조 23) 지방 통치 제도를 재정비하였는데, 이때 내제군(奈堤郡)이었던 행정 구역을 ‘제주(堤州)’로 고쳤다. 『고려사(高麗史)』 권56 지리지 양광도(楊廣道) 제주 항목을 보면, “본래 고구려 내토군(奈吐郡)이며 신라 경덕왕이 이름을 고쳐 내제군이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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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 고산사 응진전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석조 나한상군. 제천 고산사 석조 나한상군은 고산사 응진전에 관음보살을 중심으로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돌로 조성되었다. 나한이란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우침을 얻은 수행자의 단계 중 마지막 단계인 아라한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6가지 신통력과 8가지 해탈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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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1317년까지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던 내제군의 영현.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757년(경덕왕 16) 9주와 5소경을 설치하면서 제천 지역은 삭주(朔州)[현 춘천]에 속하였으며, 이름도 고구려에서 사용하던 내토군(奈吐郡) 명칭을 내제군(奈堤郡)으로 바꾸었다. 영현(領縣)으로 청풍현(淸風縣)과 적산현(赤山縣)을 두었다. 청풍현은 본래 사열이현(沙熱伊縣)으로 이때 개칭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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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산수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風水地理)는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시켜 집터인 양택(陽宅)과 묘지인 음택(陰宅)으로 사용하는 데 알맞은 장소를 구하는 이론으로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최적의 조건으로 삼는다. 즉 흘러가는 물줄기에 넓은 들판과 산세의 지맥이 끊어지지 않고 모래흙에 찬샘이 솟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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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천 청풍이 본관인 왕사(王師). 본관은 청풍(淸風)이다. 자는 구을(丘乙)이고, 호는 무극노인(無極老人)이며, 초명은 청분(淸玢)이다. 혼구(混丘)[1250~1322]는 어릴 적부터 탑을 만들고, 벽을 향하여 앉아 사색에 잠겼으며, 용모가 단정하고 성품이 자애로워 소미타(小彌陀)라 불렸다고 전한다. 10세 때 무위사(無爲寺)로 출가하여 천경 선사(天鏡禪師)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