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14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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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東漸 |
영어공식명칭 | Jo Dongjeom |
이칭/별칭 | 성진(聖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정아 |
출생 시기/일시 | 1700년 - 조동점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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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28년 - 조동점 별시 무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755년 - 조동점 포도대장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755년 - 조동점 사망 |
묘소|단소 | 화성 양노리 조세성 묘, 조동점 묘, 조완 묘 -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양노리 산 26-5번지 |
성격 | 무관 |
성별 | 남 |
본관 | 평양(平壤) |
대표 관직 | 포도대장(捕盜大將) |
[정의]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무신.
[가계]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성진(聖進). 부친은 가의대부(嘉義大夫) 행수원도호부사(行水原都護府使) 겸 경기우방어사(兼京畿右防禦使) 조빈(趙儐)이다. 동생은 조동겸(趙東謙), 서제(庶弟)는 조동형(趙東亨)이다.
[활동 사항]
조동점(趙東漸)[1700~1755]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관직은 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선전관(宣傳官)·경기수군절도사(京畿水軍節度使)·함경북도병마절도사(咸鏡北道兵馬節度使)·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어영대장(御營大將)·포도대장(捕盜大將) 등을 역임하였다.
1728년(영조 4) 별시 무과에서 병과 276위로 급제하였다. 1753년(영조 29) 도성(都城) 안의 사족(士族)들의 집에도 도둑이 들자, 도성 내의 도둑들을 전부 잡아들이라는 명을 받았다. 1754년(영조 30)에는 왕세자(王世子)가 영남 지방에서 거둬들인 3만 섬의 곡식과 호남 지방에서 거둬들인 2만 섬의 곡식을 점차 경상남도의 통영(統營)으로 옮기기로 결심하는데 결정적인 조언을 하기도 하였다. 1755년(영조 31)에는 포도대장에 특별히 제수되었다. 사촌 형제인 조동정(趙東鼎)이 옥사하자 이에 놀라 병이 났는데, 평소에 그를 아끼던 임금이 병을 치료할 약(藥)을 보내주었으나, 7일간 입에 음식을 대지 않다가 결국 굶어죽었다.
[묘소]
조세성, 조완의 묘와 함께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양노리 산 26-40과 산 26-5번지에 걸쳐 평양 조씨 묘역으로 조성되어 있다. 화성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공식 명칭은 화성 양노리 조세성 묘, 조동점 묘, 조완묘이다.
[상훈과 추모]
조동점의 죽음을 불쌍히 여긴 임금이 직접 글을 지어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