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1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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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鉉西 |
이칭/별칭 | 柳順萬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철웅 |
출생 시기/일시 | 1882년 - 유현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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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음력 8월 - 유현서 김형직(金衡直) 의진 가담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7월 - 유현서 군자금 모집 활동 중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3월 20일 - 유현서 대심원에서 교수형 확정 |
몰년 시기/일시 | 1909년 3월 - 유현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유현서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옛 수원군 향남면] 온돌가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 출신의 개항기 의병장.
[활동 사항]
유현서(柳鉉西)[1882~1909]는 1882년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서 태어났다. 유순만(柳順萬)으로도 불렸다. 1907년 음력 8월 김형직(金衡直) 의진에 가담하였다. 동료 의병 7~80여 명과 함께 총기를 들고 1907년 음력 10월까지 충청북도 보은·연풍·문의 등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4월 의병 10여 명을 이끄는 의병장이 되어 1908년 7월까지 충청북도 청주·회인·문의 등 지역에서 11명에게 125원의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11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강도 및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1909년 3월 5일 경성공소원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유현서는 이에 항소하였으나, 3월 20일 대심원에서 기각되어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개항기 의병장으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되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