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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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思黙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출생 시기/일시 | 1924년 8월 20일 - 홍사묵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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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32년 4월 1일 - 홍사묵 팔탄공립보통학교에 입학 |
수학 시기/일시 | 1938년 3월 - 홍사묵 경성공립직업학교 건축과 진학 |
수학 시기/일시 | 1940년 3월 - 홍사묵 경성공립직업학교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4월 15일 - 홍사묵 경성부청 공영부(工營部) 영선과(營繕課) 고원(雇員)으로 근무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3월~7월 - 홍사묵 동료들에게 일본인과의 차별, 한국어 폐지, 한국인에 대한 징병제도 실시 등 성토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12월 9일 - 홍사묵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53년 9월 27일 - 홍사묵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6년 - 홍사묵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경기도 수원군 팔탄면 하저리[현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하저리] 872 |
학교|수학지 | 팔탄공립보통학교 - 팔탄초등학교[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구장리 536-1] |
학교|수학지 | 경성공립직업학교 - 서울과학기술대학교[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2동]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홍사묵(洪思黙)[1924~1943]은 1924년 8월 20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팔탄면 하저리[현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하저리] 872번지이다. 1930년 3월 하저리에 있는 한문서당에 들어가, 6개월 간 천자문을 배웠고, 1932년 4월에는 팔탄공립보통학교[현 팔탄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38년 보통학교 졸업과 동시에 경성공립직업학교[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과에 입학하여 1940년에 졸업하였다. 학업을 마친 홍사묵은 1940년 4월 15일부터 경성부청 공영부(工營部) 영선과(營繕課)에서 고원(雇員)[보조원]으로 근무하였다. 홍사묵은 평소에 『이등공조난기(伊藤公遭難記)』를 읽고 안중근(安重根) 의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한글 소설을 읽으며 민족의식을 키웠고, 일제의 민족 차별과 식민지 정책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 1943년 3월부터 7월까지 동료들에게 일본인과의 차별, 한국어 폐지, 한국인에 대한 징병 제도 실시 등을 성토하였다. 1943년 3월 29일 일기장에는 “일본놈들은 약자를 무시하고, 강자에게는 그 의견조차 말하지 않는데 놈들의 본성이다.”라고 하였고, 1943년 5월 20일에는 “어제 조선신궁에서 우리들 조선인 동포들에 대한 압박 정치의 폭로인 징병 제도 선서식을 거행하였다. 마음 속 깊이 쌓인 조국 애착심을 여하히 버리고 그들의 부하로 타락해가야 하나” 등의 내용을 적었다. 이에 홍사묵은 총독 정치에 대한 비판과 대동아 전쟁에서 일본의 패전을 기대하는 불온 언동을 한 것, 군사에 관해 유언비어를 유포한 죄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3년 12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육·해군형법 위반, 조선임시보안법 위반, 보안령 위반, 안녕질서에 대한 건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43년 9월 27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사실이 확인되어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