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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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春甫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출생 시기/일시 | 1867년 12월 10일 - 최춘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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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6일 - 최춘보 송산면 독립만세시위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8일 - 최춘보 송산면 사강리 경찰관 주재소 부근에서 노구치 고조[野口廣三] 처단 |
몰년 시기/일시 | 1936년 6월 30일 - 최춘보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9년 - 최춘보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충청남도 음죽군[현 경기도 이천시] |
거주|이주지 |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648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최춘보(崔春甫)[1867~1936]는 1867년 12월 10일 충청남도 음죽군[현 경기도 이천시]에서 태어났다. 거주지는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648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 홍면옥(洪冕玉)·왕광연(王光演)·홍명선(洪明善) 등과 함께 송산면사무소 부근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3월 28일에는 송산면사무소 뒷산과 그 부근에서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조선독립을 고창하였다. 출동한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홍면옥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히자, 군중은 노구치 고조를 죽이려 하였고, 최춘보는 왕광연·홍면선·홍남후(洪南厚) 등과 노구치 고조에게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난타하여 처단하였다. 1920년 4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 살인,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36년 6월 3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송산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공적이 확인되어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