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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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濟德 |
이칭/별칭 | 장순명(張順命),장순명(張順明)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출생 시기/일시 | 1882년 4월 8일 - 장제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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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3일 - 장제덕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독립만세시위 주도 |
몰년 시기/일시 | 1937년 1월 3일 - 장제덕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1년 - 장제덕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거주|이주지 |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주곡리[현 경기도 화성시 우정면 주곡리] 53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장제덕(張濟德)[1882~1937]은 1882년 4월 8일 경기도 수원군 양감면 정문리[현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정문리]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주곡리[현 경기도 화성시 우정면 주곡리] 53번지이며, 장순명(張順命), 혹은 장순명(張順明)으로도 불렸다. 1919년 4월 3일 차희식(車喜植), 장소진(張韶鎭)과 함께 이영쇠(李永釗) 등에게 ‘오늘 면 내에서 조선을 독립시킬 목적으로 독립만세를 외칠 것이니, 나와서 참가해야 한다’는 뜻을 전하고, 장안면사무소와 우정면 쌍봉산(雙峯山)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후 군중을 지휘하여 우정면사무소와 화수리 경찰관주재소를 향하여 돌을 투척하게 하였다. 이영쇠가 화수리 경찰관주재소에 불을 질러 주재소 안에 있던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가 총을 쏘며 도망하자, 가와바타 도요타로를 추적하여 처단하였다. 이에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소요, 살인, 방화 등의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1924년의 은사(恩赦)와 1927년의 칙령 제11호 대사령(大赦令)으로 감형되어 1927년 2월 24일 징역 9년 9일로 형이 결정되었다. 1937년 1월 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