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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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印壽萬 |
이칭/별칭 | 印水萬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출생 시기/일시 | 1895년 5월 5일 - 인수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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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3일 - 인수만 장안면·우정면 독립만세시위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45년 5월 25일 - 인수만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7년 - 인수만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 417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인수만(印壽萬)[1895~1945]은 1895년 5월 5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 41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사무소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난 것을 알고 운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갔으나, 면사무소는 이미 불타고 있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쌍봉산으로 올라가 만세를 부르는 것을 보고 합류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우정면사무소와 화수리 경찰관주재소 건물에 돌을 투척하고 기물을 부수었다. 또한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가 총을 쏘며 도망가자 추격하여 처단하였다. 이날의 시위로 일제는 대대적인 검거를 시작하여 인수만은 4월 4일 체포되었다.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며, 체포와 신문 과정에서 고문을 받아 불구가 되었다. 1945년 5월 2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