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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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潤植 |
이칭/별칭 | 이석춘(李惜春),이윤식(李允植)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출생 시기/일시 | 1879년 3월 3일 - 이윤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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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6일 - 이윤식 송산면 독립만세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55년 12월 18일 - 이윤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이윤식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607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윤식(李潤植)[1879~1955]은 1879년 3월 3일 경기도 수원군 수원면 남창리에서 태어나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607번지에 거주하였다. 이석춘(李惜春)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28일 홍면옥(洪冕玉) 등의 주도로 송산면사무소 부근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탄압하기 위하여 출동한 순사 노구치 고조[野口廣三]는 홍면에게 권총을 발사하였다. 군중이 격노하여 노구치 고조를 살해하려고 하자, 노구치 고조는 자전거를 타고 송산면 사강리의 경찰관주재소 부근으로 도망갔다. 이에 이윤식은 왕광연(王光演)·홍면선(洪明善) 등과 함께 돌을 던져 노구치 고조를 자전거에서 떨어지게 하였고, 이후 사람들은 돌을 던지거나 몽둥이로 구타하여 처단하였다. 1920년 4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아 상고하였으나,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55년 12월 1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송산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공적이 확인되어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