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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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王光演 |
이칭/별칭 | 왕국신(王國臣)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출생 시기/일시 | 1872년 10월 26일 - 왕광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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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6일 - 왕광연 송산면사무소 독립만세시위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8일 - 왕광연 순사 노구치 고조 처단 |
몰년 시기/일시 | 1951년 12월 24일 - 왕광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왕광연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
거주|이주지 |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23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왕광연(王光演)[1872~1951]은 1872년 10월 26일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23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왕국신(王國臣)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26일 오후 5시 경 홍면옥(洪冕玉)·홍명선(洪明善)·홍복룡(洪福龍)·김교창(金敎昌)·김용준(金容俊) 등과 함께 송산면사무소 부근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3월 28일에도 송산면사무소 뒷산과 그 부근에서 1,000여명의 군중과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를 탄압하기 위해 출장 온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홍면에게 권총을 발사하여 총상을 입히자, 왕광연은 홍준옥(洪㻐玉)·문상익(文相翊) 등과 함께 순사를 죽이라고 외쳤다. 도망가는 노구치를 추격하여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난타하여 처단하였다. 1920년 4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 보안법 위반, 살인 혐의로 징역 12년 판결을 받고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었다. 이후 1924년의 은사(恩赦) 감형과 1927년 칙령 제11호 대사령(大赦令)에 의하여 일부 사면을 받게 되어 1927년 2월 24일 징역 8년 10월 20일로 형이 확정되었다. 1951년 12월 24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송산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공적이 확인되어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