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6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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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明鎬 |
이칭/별칭 | 김여근(金汝根)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철웅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명호(金明鎬)[1887~1951]는 1887년 6월 16일 태어났다. 김여근(金汝根)이라고도 불렸다. 김명호는 1919년 4월 3일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長安面水村理)에서 발생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4월 3일의 시위는 수촌리 주민 100여 명이 아침에 밀양산에 모인 뒤,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안면사무소로 향하며 시작되었다. 김명호는 정오 경 사환 이원준에게 장안면사무소 파괴 항쟁에 가담하라는 연락을 받고 시위에 가담하였다. 김명호는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시위군중과 함께 쌍봉산(雙峯山)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친 뒤, 우정면으로 향하는 시위 군중 1,500여 명에 합류하였다. 우정면사무소에서 서류를 불태우고 면사무소 건물을 투석하여 파괴한 뒤, 화수리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를 처단하고 주재소를 방화하는 등 독립만세운동을 벌이다가 체포되었다.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소요, 살인, 방화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951년 4월 1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