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6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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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建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철웅 |
[정의]
경기도 화성 출신의 개항기 의병.
[활동 사항]
홍건(洪建)[1838~?]은 1838년에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이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공포되자, 안창식(安昌植) 등은 이를 반역행위로 보고 일제와 개화파 관리를 처단하기 위하여 의병을 모아 봉기하였다. 안창식 등은 1896년월 1월 2일 지방 유생들과 함께 180명의 민병을 이끌고 홍주 관아에 집결하였다. 1896년 1월 17일에는 김복한(金福漢)을 창의대장에 추대하여 홍주의진(洪州義陣)을 구성하였다. 이때 홍건도 홍주의진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홍주의진은 결성된지 하루만인 1월 17일에 관찰사 이승우(李勝宇)가 배신하면서 지도급 인사 23인이 구금되었다. 이 가운데 이른바 '홍주6의사'로 불리는 김복한·이설(李偰)·홍건·안병찬(安昌植)·송병직(宋秉稷)·이상린(李相麟) 등은 서울로 압송되었다. 이들 '홍주6의사'는 서울로 압송되던 도중 2월 13일 무죄 석방되었으나, 그 다음날 2월 14일에 제천에서 유인석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에 다시 서울로 압송되었다. 1896년 4월 9일 김복한은 유배 10년, 홍건·이상린·송병직·안병찬은 징역 3년, 이설은 태형 80대의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고종이 이들을 사면하면서 전원 석방하였다.
[상훈과 추모]
개항기 홍주의진에 참여한 사실이 확인되어 2009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