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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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房士良 |
이칭/별칭 | 방중량(房仲良),행은(杏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왕무 |
[정의]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인 남양 방씨의 후손으로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초명은 방중량(房仲良), 호(號)는 행은(杏隱). 당나라 태종대의 재상인 방현령(房玄齡)의 둘째 아들인 부마도위 방준(房俊)이 643년 고구려 보장왕의 요청으로 동래하여 경기도 화성시의 당성(唐城)에 정착하면서 남양 방씨(南陽 房氏)의 가계가 시작되었다. 중시조 방계홍(房季弘)이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의 지위를 받았으며, 화성시 마도면 청원리의 당성 숭령사(崇靈祠)에서 향사한다. 방계홍의 아들 방의강(房儀康)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서 중서문하평장사(中書門下平章事)를 역임하였으며, 손자 방진유(房珍儒)는 추밀원부사(樞密院府使)로 예부상서(禮部尙書)를 겸하였고, 손자 방정유(房貞儒)는 대광(大匡)을 지내고 수원 방씨(水原房氏)로 분파하였다. 방사량은 상호군(上護軍) 방주(房柱)의 아들이다. 방사량의 아들 3형제 중 장남 방구행(房九行)은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하고, 차남 방구달(房九達)은 군자감 부정(軍資監副正)을 지냈다.
[활동 사항]
방사량(房士良)[?~?]은 고려 후기 신진사대부 출신으로 1377년(우왕 3) 문과에 급제하여 직제학(直提學)을 역임하였다. 1391년(공양왕 3) 3월 중랑장(中郞將)으로서 시무 11조를 지어 올려 왕이 받아들였고, 이후 형조정랑(刑曹正郞)에 임명되었다. 1399년(정종 1) 서원군(西原君) 한상민(韓尙敏)·순흥군(順興君) 안경량(安敬良)·김원경(金元冏)·허형(許衡)·이종(李悰) 등과 함께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신찬집성마의방(新撰集成馬醫方)』·『신찬집성우의방(新撰集成牛醫方)』의 편집에도 참여하였다. 1403년(태종 3) 5월 하륜(河崙)·이첨(李詹) 등과 함께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학문과 저술]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신찬집성마의방(新撰集成馬醫方)』·『신찬집성우의방(新撰集成牛醫方)』 등의 의서와 우마 진료서 편찬에 참여하였다.
[상훈과 추모]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영천리에 있는 유천서원(楡川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