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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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風 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한상우 |
본관 | 청풍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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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청풍 김씨 집성지 -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삼화리 |유포리 |
성씨 시조 | 김대유 |
[정의]
김대유를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연원]
청풍 김씨 시조는 신라 김알지(金閼智)의 후예인 김순웅(金順雄)의 12세손 김대유(金大猷)이다. 김대유는 고려 말 인물로,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청성은 청풍의 별호]에 추봉되었다. 김대유 이후 후손들이 청풍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청풍 김씨는 조선 시대에 들어 현종과 정조의 비를 배출하였으며, 100명이 넘는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효종 대에 영의정을 지낸 김육(金堉)[1580~1658]도 청풍 김씨이다. 김육은 대동법 시행, 상평통보 발행 등의 조선 시대 주요 경제 정책을 주도한 인물로 유명하다. 김육과 김육의 아들들은 병자호란 이후 조선이 회복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고, 김육의 손녀는 현종의 비인 명성왕후가 되었다. 또 숙종 대에 김구(金構)가 우의정, 김구의 아들 김재로(金在魯)가 영조 대에 영의정, 김재로의 아들 김치인(金致仁)이 정조 대에 영의정을 지내며 3대에 걸쳐 정승을 배출한 가문으로 위세를 떨쳤다.
[입향 경위]
청풍 김씨의 화성 지역 입향 경위는 알려진 것이 없다.
[현황]
청풍 김씨는 198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화성 지역에 120세대 505명이 거주하는 것이 확인되었고, 2015년 조사에서는 1,458명이 조사되었다. 화성 지역 주요 집성지는 비봉면 삼화리와 유포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