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1436 |
---|---|
한자 | 洪愛施德 |
이칭/별칭 | 홍오순(洪五順)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박철웅 |
[정의]
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기독교계 지도자.
[가계]
부친은 구한말 개화파 관료 홍정후(洪正厚)이다. 모친은 한메리이다.
[활동 사항]
홍애시덕(洪愛施德)[1892~1975]은 1892년 3월 20일 태어났다. 본명은 홍오순(洪五順)이며, 애시덕(愛施德)은 영어명 에스더(Esther)를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1912년 이화학당 중등과를 졸업하고 이화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17년 이화학당 대학 본과에 입학하였으며, 1919년 유관순(柳寬順)과 여성동지회(女性同志會)를 조직하였다. 1920년에는 김활란(金活蘭)·윤성덕(尹聖德)과 함께 이화 7인전도대를 조직하고 순회 전도·계몽운동을 하였다. 1922년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朝鮮女子基督敎靑年會聯合會) 초대 부회장을 역임하였으며, 1923년 9월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를 발족시키고 초대 회장에 취임하였다. 같은 해 미국 감리학 여선교사의 후원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스카릿대학 신학부에 입학하였다. 1926년 졸업 후 귀국하여 감리교신학교(監理敎神學大學校) 교수로 취임하였다. 1926년 12월에는 김활란·방신영(方信榮)과 망월구락부(望月具樂部)를 결성하여 사회주의계열 여성 운동 단체와 협력을 모색하였다. 1927년 5월 27일에는 신간회의 자매 단체이자, 좌·우익 연합 기관인 근우회의 창립 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8년 1월 상하이에서 개최된 감리교동아회에 교계 대표 8인과 함께 한국교회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였다.
해방 후에는 여자기독교절제회 운동을 다시 전개하여 1961년 제 6대 회장으로 취임하였으며, 이화여자대학교 이사, 대한부인회 서울본부 회장, 감리교총리원 부녀국장을 역임하였다. 1975년 10월 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홍애시덕은 장기간 기독교를 통하여 민족계몽과 문맹퇴치 활동을 한 사실이 확인되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