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1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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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昌鎔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박철웅 |
[정의]
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화성독립운동아카이브에는 음덕[마도] 출신이라고 되어 있으나, 판결문에는 안성시 원곡면 거주라고만 언급되어 화성과의 연관성이 명확하지 않다.
[활동 사항]
최창용(崔昌鎔)[1895~1974]은 1895년 11월 29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元谷面)이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 양성면(陽城面)·원곡면(元谷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경기도 안성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은 본래 양성면과 원곡면이 별도로 만세운동을 진행하였다. 최창용은 처음에 원곡면에서 발생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원곡면의 시위 군중은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독립 만세를 외친 뒤, 횃불과 연장을 들고 양성면으로 행진하였다. 원곡면과 양성면을 가로지르는 고개에 이르러 시위를 주도한 최은식(崔殷植)·홍창섭(洪昌燮)·이유석(李裕奭) 등은 연설을 한 뒤, 양성면 경찰관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를 파괴하기로 결의하였다. 원곡면 시위 군중이 양성면에 도착하였을 때, 양성면 경찰관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 중이던 양성면 주민 1천 여명이 원곡면 시위 군중에 합류하게 되었다. 양성면·원곡면의 시위 군중은 오후 10시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경찰주재소를 불태웠으며, 이어 양성 우편소와 일본인 외리여수(外里與手)가 운영하는 잡화점 및 고리대금업자 융수지(隆秀知)의 집을 파괴하였다. 양성면·원곡면의 시위 군중은 양성면사무소를 파괴한 후,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친 뒤 해산하였다. 시위대가 해산한 후 원곡면으로 돌아온 최창용은 원곡면사무소 건물을 파괴하는 등 재차 독립만세운동을 벌이다가 일경에 의해 체포되었다. 1912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 소요 등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경기도 안성 양성면(陽城面)·원곡면(元谷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사실이 확인되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