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1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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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谷趙復陽關聯古文書 |
이칭/별칭 | 송곡집,조복양문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기중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0년 5월 8일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61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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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 |
소장처 | 화성시역사박물관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행정동로 96 화성시역사박물관[행정리 478] |
성격 | 고문헌 |
관련 인물 | 조복양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기도 화성시 화성시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고문서.
[개설]
경기도 화성 지역에 풍양 조씨가 세거하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전으로 추정되며, 매송면 원리와 송라리, 야목리 들목과 당곡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이중 야목리 들목일대에 사는 풍양 조씨를 '들목에 사는 조씨'라 하여 들목 조씨로 부르고 있다. 들목 조씨들은 조계팽의 묘를 남양부 북쪽 소교촌 수작리에 쓰면서부터 화성 지역과 관련을 맺게 되었다. 이후 후손들은 이 일대에 선영을 조성하였으며, 들목과 당곡 일대는 들목 조씨들의 생활 근거가 되었다.
송곡(松谷) 조복양은 조간(趙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영중(趙瑩中)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조익(趙翼)이다. 어머니는 성주 현씨(星州玄氏)이다. 조복양은 1691년(광해군 1)에 출생하여 1671년(현종 12)에 사망하였다. 조복양은 현종대 대사간과 진휼청 당상, 강화유수를 거쳐 이조판서, 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조복양은 사후 광주(廣州)의 명고서원(明皐書院)에 제향되었다. 『송곡집』은 그가 생전에 지은 시문과 관직생활을 하면서 작성한 상소문 및 서계 그리고 국왕에게서 받은 교서 등을 수록하고 있다. 문집의 마지막에는 그의 사후 왕과 왕세자 및 여러 유학자들이 지은 제문과 만사로 이루어져 있다.
[형태]
송곡 조복양관련 고문서는 모두 낱장이다. 백패 세로 96.5㎝, 가로 41㎝, 홍패 세로 85㎝, 가로 74.5㎝, 별급문기 세로 81㎝, 가로 60㎝, 증시교지 세로 69.30㎝, 가로 1080㎝이다.
[구성/내용]
송곡 조복양관련 고문서는 총 4점이다. 백패(白牌)는 1633년(인조 11) 유학 조복양이 진사시 3등 제10인으로 합격한 문서, 홍패(紅牌)는 1638년(인조 16) 진사 조복양이 문과 병과 제3인으로 급제한 문서이고, 별급문기는 1638년 과거에 급제하고 돌아온 조복양을 위해 아버지인 조익이 재산을 나누어 준 문서이며, 증시교지는 조복양 사후 1681년(숙종 7)에 '문간'이라는 시호를 하사한 교지이다.
[의의와 평가]
송곡 조복양관련 고문서 4점은 조복양의 정치적 행로의 일부를 보여주는 자료로 당시 정치 상황과 과거풍습 등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2020년 5월 8일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