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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1382
한자 淸明山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백곡리 산184-2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권기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4세기 후반~5세기 초 - 청명산성 축조
소재지 청명산성 -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백곡리 산184-2 지도보기
성격 산성

[정의]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변천]

청명산성은 산성의 축조 방식 및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로 보아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 사이에 백제가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남양만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방어에 유리한 입지이다. 화성 지역 및 남양만 일대에 대한 통치 거점으로서 역할 하였을 것이다.

이후 5세기 후반인 475년, 화성 지역은 고구려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다. 고구려는 금강 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백제의 성곽을 재활용하였는데, 청명산성도 이용하였는 지는 발굴 조사가 거의 진행되지 않아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청명산성이 공주 지역 및 금강 유역으로 남하하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두면, 고구려가 재활용하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하여 볼 수 있다.

한편, 6세기 후반 신라가 중부 지역에 진출하면서는 남양만에 당항진을 두었는데, 청명산성은 당항진 주변 방어 체계의 일환으로 이용되었을 것이다. 이후에도 청명산성은 당항진과 남양만이 갖는 중요성으로 인해 통일 신라 시대를 거쳐 고려,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용되었다.

[위치]

청명산성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홍법리마도면 백곡리 경계에 자리한 청명산 정상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청명산성은 산성에 대한 기초적인 조사만 진행되었으며, 발굴 조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테뫼식 토성이지만, 북쪽 봉우리 주위는 석축하였다. 둘레는 약 1.2㎞이고, 내부에는 2.5~3m의 회곽도가 조성되어 있다. 성벽은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L’자 식으로 삭토하고 편축하였는데, 한강 유역 백제 산성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산성 내부의 취락지에서는 한성백제 시기 토기가 다수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청명산성은 삼국 시대 한강 유역을 둘러싼 경쟁에서 남양만이 가지는 지리적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라 할 수 있다. 삼국은 남양만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청명산성을 바탕으로 지역 방어 체계를 구상하였는데, 이러한 양상은 고려~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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