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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요 배씨토가 푸레도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1377
한자 韓美窯裵氏-
영어공식명칭 PUREDOGI
이칭/별칭 퓨어세라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담밭성지길 66-4[장외리 226-7]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철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미상 - 옹기 공방 설립
이전 시기/일시 1955년 - 한미요업 이전
이전 시기/일시 1992년 - 한미요 배씨토가 이전
이전 시기/일시 2009년 - 한미요 배씨토가 이전
개칭 시기/일시 1955년연표보기 - 옹기 공방에서 한미요업으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한미요업에서 한미요 배씨토가로 개칭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 한미요 배씨토가와 퓨어 세라 혼용
최초 설립지 경기도 여주시 오학동
주소 변경 이력 한미요업 - 서울특별시 중랑구 신내동
주소 변경 이력 한미요 배씨토가 -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송천리
현 소재지 한미요 배씨토가 -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담밭성지길 66-4[장외리 226-7]지도보기
성격 제조업체
설립자 배의석
전화 031-366-9110
홈페이지 https://www.onggi.co.kr

[정의]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장외리에 있는 공방.

[개설]

한미요 배씨토가 푸레도기연구소는 조선 왕실에서 사용한 그릇 푸레독과 푸레도기를 복원·제작하는 업체이다. 한미요 배씨토가는 한국의 아름다운 가마를 운영하는 배씨 흙집이라는 뜻이다.

[푸레독과 푸레도기]

푸레독의 어원은 푸르스름하다의 우리말 '푸레'와 배가 나온 큰 형태의 그릇이라는 '독'이 합쳐진 것이다. 한미요 배씨토가는 현재 그들이 제작한 옹기 중 독과 같은 큰 형태의 기능성 저장용 그릇을 '푸레독'으로, 독을 제외한 실생활에서 사용 가능한 찻잔, 물잔, 주전자와 같은 생활소품을 '푸레도기'로 분류하고 있다.

푸레도기와 푸레독은 유약과 잿물을 바르지 않고 초벌구이 없이 1,300도 가마에 5일간 구워 완성한다. 5일간 가마 불을 때면서 생기는 나무재가 그릇 위에 쌓이게 하며, 가마 온도가 1,300도가 되면 도기에 천일염을 뿌려 나무재를 그릇에 붙여주는 작업으로 흙 위에 나무재가 표면을 이룰 수 있게 한다. 이때 뿌린 천일염이 푸레도기에 방부성을 주게 된다. 1,300도 최고 고온에서 많은 양의 나무를 가득 채워 넣고 나무가 타기 전에 가마를 흙으로 덮어 밀봉하는데, 이 작업으로 생긴 탄소가 푸레도기의 숨구멍에 붙어서 그릇을 검푸른 색으로 바뀌게 해준다. 연기가 입혀진 도기는 정수·정화·탈취·항균 기능을 가지게 된다.

배연식이 개량하기 이전 푸레독과 푸레도기는 유약과 잿물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물을 담았을 때 새거나 이물질이 스며드는 단점이 있었다. 배연식은 2차 퇴적 점토를 삽으로 채취해 3년 이상의 숙성과정을 거치고, 가마 온도를 1,300도 이상으로 올려서 숨구멍의 크기를 줄이는데 성공하여, 산소는 통하지만 물은 새지 않는 푸레도기를 완성하였다. 현재의 푸레도기는 한 점 제작할 때 3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되며, 두들겼을 때 쇠처럼 강한 질감과 소리를 내고 고온에서 완성되는 고급 그릇의 특징인 도지미 자국이 남는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변천]

한미요 배씨토가 푸레도기연구소를 운영 중인 배씨가문은 9대 300여년에 걸쳐 푸레독과 푸레도기의 전통을 계승해 오고 있다. 옹기장인으로서 배씨 가문은 1대 배관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8세기 후반, 충청도 당진 내포 지역은 서학을 받아들인 실학자들 중심으로 천주교가 전파되고 있었다. 내포 지역의 무역선을 만들던 일을 가업으로 하던 배씨 집안의 목수이자 선주였던 배관겸 또한 천주교 신자였다. 배관겸은 조정 관아의 천주교 박해의 기운이 강해지자 가족을 이끌고 산속으로 숨어 살며 옹기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천주교도로서 배관겸은 강당을 설립하고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모시려는 등의 활동을 하였으나, 1798년 체포되어 청주 병영에서 1800년 1월 7일 순교하였다. 배관겸은 2014년 8월 16일 한국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순교자 124위중 13위로 시복되었다.

배관겸의 두 아들 배청모와 배안드레아 또한 조선의 천주교 박해로 순교하였다. 조부와 부친의 순교 이후, 배안드레아의 3남 배필영(3대) 및 그의 후손들은 천안, 진천, 음성을 거쳐 여주 학동으로 거주지를 옮기며 옹기를 만드는 가업을 이었다. 배필영의 차남 배종우(4대)가 옹기장인의 가업을 이었으며, 5대 배필영은 경기도 여주시 오학동에서 유약과 잿물 없이 만들고 왕실에서 사용하였다는 옹기 '푸레독' 중심으로 옹기를 제작하였다.

배의석(6대)과 배요섭(7대)은 1955년 서울특별시 중랑구 신내동으로 공방을 옮겨 부자가 함께 '한미요업'이라는 옹기전문점을 운영하였다. 1968년 배의석이 사망하자 배요섭은 주도적으로 공방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에는 수요가 많았던 오지 옹기[붉은 진흙으로 만들어 볕에 말린 뒤 잿물을 입혀 구운 옹기]를 주로 생산하였다. 1974년 옹기 제작에 사용되는 잿물에 들어간 광명단(光明團)의 납 성분이 기준치보다 높다는, 이른바 광명단 사건이 발생하였다. 7년 간의 소송 끝에 배요섭과 그의 아들 배연식(8대)은 그들의 옹기가 무해 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냈다. 재판에서 승리하였지만, 이를 계기로 배요섭과 배연식은 잿물을 바르지 않는 푸레독을 다시 제작하게 되었다.

1992년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송천리로 공방을 이전하고 공방의 이름을 한미요업에서 지금의 '한미요 배씨토가'로 변경하였었다. 송천리 공방에서 배연식은 푸레독을 개량·발전시키는 연구에 매진하였다. 한양대학교 재료공학부 출신으로서 배연식은 자신의 전공을 가업의 푸레독 제작에 접목시키고자 하였다. 그 결과 배연식은 기존 푸레독보다 재료(흙, 나무, 소금)에 대한 연구·관리에 힘쓰고, 재료의 특성에 따른 소성 방법 등을 더욱 발전시켜서 1,300도의 온도로 소성이 가능한 푸레독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후 송천리의 작업장 주변이 전원주택단지로 개발되면서 2009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으로 작업장을 이전하였다.

7대 배요섭은 푸레독의 제작 기술을 복원한 공로로 2002년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옹기장 제30호로 지정되었다. 8대 배연식은 대한민국푸레독 제작 숙련 기술 전수자(고용노동부 99-4호)이며, 9대 배은경·배새롬은 현재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옹기자 이수자이다. 현재는 배연식의 두 딸 배은경·배새롬이 9대째 가업을 이으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2021년 푸레독과 푸레도기를 해외에 수출하며 사명을 퓨어세라(pure=cera)로 변경하였다. 한미요 배씨토가의 이름 또한 함께 사용되고 있는 중이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한미요 배씨토가 푸레도기연구소는 해외 유명 전시회에 다수 참여하였으며. 대표적인 국내 전시로는 2012년에 설화문화전 「흙, 숨쉬다. 옹기」에 참여하였으며, 2016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설립이래 최초의 공예전시 「공예공방 공예가 되기까지」에 참여하였다. 2017년에는 배연식의 작품 두 점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6개월의 작품 감정을 측정받고 국고 매입 되었다. 2018년에 화성시 동탄아트스페이스 화성 지역 작가 기획전에 배씨 가문과 푸레도기를 주제로 한 「배씨 성(姓)을 가진 푸레도기전 : 278년 동안의 가업 이야기」가 개최되었으며, 2021년 9월 용산공예관에서 특별전 「281년 배씨 가족의 왕실 그릇 '푸레도기'」를 개최하였다.

[현황]

2021년 7월 현재 배은경이 대표로 있다. 푸레도기의 물 정수 기능이 인정되어,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FDA에 4년 연속으로 의료기기로 승인·등록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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