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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고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1329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원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노루고개」 『화성군사』하권에 수록
관련 지명 노루고개 -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 지도보기
채록지 경기도 수원시 북수동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이양의 아들|산신
모티프 유형 보은담

[정의]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에 있는 함평 이씨의 묘자리가 노루로 변한 산신을 구해주고 보은으로 받은 길지라는 이야기.

[개설]

「노루고개」 설화에서 분천리에 살던 이양의 아들이 노루로 변한 산신을 사냥꾼으로부터 구해준 것에 대한 보은으로 좋은 묘자리를 받는 내용처럼 함평 이씨 함성군파의 묘역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 산 34-1 일원에 있으며 50여 기(基)의 묘소를 모시고 있다. 함평 이씨 함성군파의 재실인 성경재(誠敬齋)는 묘역의 가운데인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 335-3에 있으며, 사당 추운사(楸雲祠)는 재실 뒤편인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 335-4에 위치한다. 설화에서 이양의 아들이 노루를 처음 만난 곳이라 전해지는 노루고개는 지도에 노리고개라 등록되어 있다. 노루고개분천리에서 왕림리로 재를 넘어가는 고갯길목인데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의 437-14·437-17·437-18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으며, 노루고개 아래로는 43번 국도인 봉영로가 통하여 지난다.

[채록/수집 상황]

1990년 출판된 『화성군사』하권 883~885쪽에 「노루고개」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자료의 제보자는 경기도 수원시 북수동에 사는 이영헌이다. 2005년 발간된 『화성시사』2권에 동일한 출처 자료가 「노루고개」라는 제목으로 434~435쪽에 수록되어 있다. 2011년 화성시와 화성문화원이 발행한 『화성시의 고문헌 5 분화천(汾花川)에 뿌리내린 장군의 후예』-함평 이씨 함성군파 종손가 편의 24~25쪽에는 「3. 노루가 점지해 준 묘자리, 분천리 입향」이라는 제목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

태봉산과 각시봉 사이에 분천리왕림리가 통하는 고개가 있는데 이를 노루고개라고 한다. 분천리 입향조인 함평 이씨 이양의 아들이 뒷산에 올라 쉬고 있는데, 홀연히 노루 한 마리가 나타나 구원을 청하는 듯 슬프고 가련한 모습으로, 어쩔 줄 모르면서 허리에 차고 있던 화살집[箭筒]을 비벼대고 애원하는 듯 표정을 지었다. 이양의 아들은 노루의 행동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근처에 있던 풀잎으로 노루를 덮어주었다. 그런데 조금 후에 사냥꾼이 헐레벌떡 나타나 노루의 도망친 방향을 물었다. 이양의 아들은 태연하게 못 보았다고 하였고, 사냥꾼은 “이곳으로 지나갔을 텐데.”하며 중얼거리면서 각시봉 쪽으로 떠났다. 사냥꾼이 지나간 뒤 이양의 아들은 숨겨있는 노루를 일으켜 주었다. 노루는 풀을 털고는 의기양양하게 노루고개를 넘어 사라졌다.

며칠 후 이양의 아들이 꿈을 꾸었는데 꿈에 어떤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나는 산신이다. 산을 즐기고자 노루로 변하여 놀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사냥꾼을 만나 하마터면 죽을 뻔하였다. 그런데 네가 구해준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였다. 생명의 은인에게 보은을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인즉 네게 묘자리를 하나 일러주리라.” 꿈에서 깨고 보니 산신이 일러준 묘자리는 태봉산에서 남향으로 산줄기가 뻗어있는 내룡(來龍)[혈처까지 내려온 산줄기]의 자리였다.

그 후 얼마 있지 않아 부친 이양이 세상을 떠났다. 이양의 아들은 아버지를 좋은 묘자리에 모시기 위해 지사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으나 길지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이양의 아들은 전에 현몽으로 알려준 곳으로 갔는데, 묘자리를 본 지사(地師)는 길지(吉地)라고 탄복하였다. 그리하여 이양의 아들은 노루가 알려준 자리에 아버지의 묘를 썼다. 그 후로 가세가 번창하고 자손들도 큰 복록을 누리고 대대로 후손들이 벼슬길에 많이 오르고 문장가가 나오길 끊이지 않았다. 조선조에 문과에 급제한 사람이 70여 명에 달했다.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화산으로 이장하고, 아버지 산소 근처에 묻히고자 하였다. 이에 융릉건릉의 능역을 정할 때 인근인 태봉산도 이 구역에 모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태봉산 일대에는 함평 이씨의 묘가 많으니 나라에서 제외시켜 주었다. 이양의 아들이 노루의 모습으로 변한 산신을 구해주고, 보은을 받았기에, 그 후로 함평 이씨 자손들은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노루고기를 먹지 않으며, 잠을 잘 때에는 모로 누워 자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노루고개」설화에서는 동물을 구해주고 보은을 받는다는 모티프가 나타나기에 기본적으로 동물담과 보은담적 성격을 가진다. 그런데 여기서 동물은 노루의 모습이지만, 평범한 일반의 노루가 아니라 산신이 잠시 노루로 변신한 것이고, 이를 현몽을 통해 알려주기에 신이담적인 성격을 갖는다. 산신은 노루로 변했을 때 사냥감으로 쫓기던 위기에서 목숨을 살려준 것에 대한 보은으로 길지의 묘자리를 알려주는데, 이로써 풍수담적인 면모를 찾을 수 있다.

한편 도망치던 노루에게 숨겨주고 목숨을 구해주는 선행을 베푼 함평 이씨 이양의 아들은 그 이름이 호칭되지 않아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화성시의 고문헌 5 분화천(汾花川)에 뿌리내린 장군의 후예』-함평 이씨 함성군파 종손가 편의 24쪽 각주 44번의 기술에서는 이양에게 세번(世蕃)·세성(世成)·세충(世忠)의 세 아들이 있었는데, 차자인 세성은 양주(楊州)에 기착하였고, 세충은 수원 쟁홀면에 묘가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장자인 세번으로 추측한다. 위의 책에 따르면 이양(李良)[1446~1511년]은 함평 이씨 함성군파의 분천리 입향조로 분천리에 실제 거주한 실존 인물이며, 이양의 장자인 이세번의 직계후손은 1943년에 출생한 31세손 이건일(李建一)에 이르기까지 계속 분천리에 거주하고 있다. 이렇듯 분천리절골안골, 노리골, 노리개골은 함평 이씨의 세거지로 유서가 깊으며 절골함춘군(咸春君) 이창운(李昌運)의 장자인 이유홍(李儒弘) 이후 종가의 후손들이, 안골이창운의 차자인 이유경(李儒敬)의 후손들이 세장(世葬)되어 있다. 이러한 실증적인 측면에서 「노루고개」설화는 인물전설이자 총묘(冢墓) 및 풍수와 관련되는 인문전설의 성격도 가진다. 한편 나타난 노루는 현상적 모습이고 본질은 산신인데, 함평 이씨 가문에서는 이 둘을 모두 존중하여 노루고기를 먹지 않고, 또 노루가 잠자는 습성을 따라 모로 누워 잔다는 가문의 특성을 결부한다. 노루를 구해주고 보은은 받는 이야기는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전승되는데, 이를 통해 노루는 은혜를 입으면 갚을 줄 아는 의리 있는 동물이며, 자연과 이계(異界)에 대하여 인간이 모르는 것을 많이 알고 있는 신비한 동물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노루고개」설화에서 노루가 산신이 변한 모습이었던 것처럼 노루를 영물이나 산신으로 여겨오던 문화적 인식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렇듯 「노루고개」설화는 명망 있는 양반가 함평 이씨 가문의 사적(私的)인 이야기와 화성시 지역의 지리적·문화적 특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설화의 전승을 통해 화성시의 길지에 자리 잡은 지역민으로의 자긍심과 함께 전승되는 지역 문화유산의 가치를 더욱 드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화성군사』 (화성군사편찬위원회, 1990)
  • 『화성시사』 (화성시사편찬위원회, 2005)
  • 『화성시의 고문헌』 5(화성시·화성문화원, 2011)
  • 한국민속대백과사전(https://folkency.nfm.go.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 함평 이씨 함성군파 종회(http://www.hameh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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