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1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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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子 朴長哲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원영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효자 박장철」 『화성군사』하권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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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박장철 효자각 - 경기도 화성시 장지동 493-2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박장철|도사 |
모티프 유형 | 효행담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장지동에 있는 박장철 효자각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
[개설]
밀양 박씨 박장철(朴長哲)[1780~1853]은 지역의 이름난 효자로서 1885년 고종은 박장철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정문(孝子旌門)을 내렸다. 박장철 효자각은 1986년 5월 20일 화성시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향토문화재이다. 박장철 효자각의 위치는 경기도 화성시 장지동 493-2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0년 출판된 『화성군사』하권 907~909쪽에 「박장철의 효성(朴長哲의 孝誠)」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자료의 출처는 동탄면 『밀양 박씨 희인공파보』이며, 제보자는 안익승(安益承)으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2005년 발행된 『화성시사』2권에 「밀양 박씨 효자비의 유래」라는 제목으로 441쪽에 수록되어 있다. 조사자는 이수자·김영희·이미라·황은주이며, 2002년 12월 25일 동탄면 장지리 노인정을 방문하여 제보자 이문화·박운병으로부터 채록하였다.
[내용]
조선 정조 때 장지리에 이름난 효자 박장철이 살았다. 박장철은 부모님을 극진하게 모셔왔는데, 아버지가 병환으로 고생하자 밤낮으로 병간호를 하였다. 겨울에 냉수로 목욕재계하며 쾌유를 빌었는데도 차도가 없었다. 식음을 전폐한 부친의 병을 본 의원이 송이버섯과 육고기를 드시면 아버지의 병이 나을 수 있다고 하였다. 말을 듣고 읍내로 송이버섯과 육고리를 구하러 갔다가 돌아오려고 하는데 이미 날이 저물었다. 사람들은 다음날 새벽에 떠나라고 만류했지만 박장철은 부친의 병이 위중하여 바로 밤길을 떠났다. 비까지 쏟아지는 칠흑 같이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자니 지팡이 소리와 염불 소리가 들렸다. 박장철은 속으로 ‘이 밤중에 누가 어디를 가려고 하나’ 생각했는데, 한 도사가 앞에 와서 “이 깊은 밤중에 험한 산길을 혼자서 걷고 계시니 어인 연유이십니까?”하고 물었다. 박장철이 아버지 병환에 쓸 약을 구해서 돌아가는 길이라 하니, 도사는 “소승은 산삼을 캐러 다니는 같은 쪽으로 가는 길이니 무서움도 덜 겸 동행함이 어떠신지요?”하고 청했다. 박장철은 흔쾌히 승낙하고 둘이 같이 길을 가는데 도사를 앞세우고 걸으니 비가 걷히고 길이 환하게 보여서 집에 빨리 도착하였다. 박장철이 도사에게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 유하기를 권하니 도사가 갑자기 변하여 큰 호랑이가 되었다. 이를 본 박장철은 산신이 자신을 도와주셨다 생각하여, “그러면 식사라도 하고 가십시오.”하며 개를 한 마리 잡아 주었다. 이튿날 보니 잡아준 개가 그대로 있었고, 호랑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구해온 송이버섯과 육고기를 먹고 부친의 병세가 좋아져 회복이 되었다. 마을사람들이 그의 지극한 효성에 대해 지성이면 감천이라며 칭찬이 자자하였다. 박장철이 죽은 후 그의 효성이 지극하다 하여 고종 때 현판이 하사되었다. 해방 이후 밀양 박씨 가문에서 비를 세우고 각을 지었다. 장지리 마을 입구에 그 현판과 비가 남아서 전한다. 이로부터 호랑이가 있었던 곳을 ‘대호밭’이라고 불렀다.
또 다른 얘기도 전한다. 마을에 흉년이 들어 부모 봉양을 위해 여분의 쌀을 뒤채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이웃집에서 불이 나 뒤채까지 번졌다. 부모 봉양을 위한 쌀이기에 화상을 입으면서까지 필사적으로 불길을 잡으려 하였는데, 불길이 더욱 솟구쳐 어찌할 수가 없었다. 절망한 박장철이 하늘을 보며 탄식을 하였는데,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소나기가 쏟아지더니 불이 꺼졌다. 같이 불을 끄던 마을 사람들은 박장철의 효성을 도와 하늘이 비를 내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어느 해에 흉년에 전염병까지 번져 기아와 병고에 시달렸다. 전염병이 무서워 다들 구호에 나서지 않았는데, 박장철이 자기 재산을 털어 음식과 약을 준비하여 혼자서 병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회복을 도왔다. 그의 구휼로 살아남은 사람이 수백 명에 이르렀고 동네에 그의 칭송이 자자했다. 후에 박장철이 늙어 세상을 떠나자 동네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 ‘그가 베푼 선행과 은혜를 어찌 다 갚겠느냐, 이제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가야 하느냐’고 한탄하며 장례의 모든 일을 도와 장사를 지냈다.
[모티프 분석]
「효자 박장철」설화는 장지리에 살던 밀양 박씨 가문의 효자 박장철에 대한 인물전설이며, 효행담, 동물담, 변신담, 신이담의 성격을 가진다. 설화 내용의 주요 골자는 박장철이 부모봉양을 극진히 하였는데 위기에 처하자 박장철의 효성에 감탄한 호랑이와 하늘이 도왔다는 것이다. 박장철은 실존한 인물로 나라에서 내려준 효자정문이 효행의 증거로서 전해지기에 인물전설의 요건을 충족한다. 그리고 효행담에 주로 등장하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처럼 지극정성의 효행을 실천할 때 발생하는 문제가 이적을 통해 해결된다. 「효자 박장철」 설화의 신이한 이적은 호랑이와 소나기를 통해 나타난다. 호랑이는 영물(靈物)로서의 신이한 능력을 발휘하고, 호랑이에서 도승으로 변했다가 다시 호랑이로 변신한다. 소나기를 내려 불을 꺼준 주체는 박장철의 효성에 감동한 초월적 신적 존재로서의 하늘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전통 사회에서는 호랑이를 아주 센 힘과 빠른 속도의 신체 능력을 가진 사나운 맹수이자, 호환(虎患)을 입히는 두려운 짐승으로 여겨왔다. 호랑이에 대한 민중의 공포와 문화적 상상력은 구비설화와 민간신앙에서 호랑이를 보통의 동물과 다른 이물(異物) 또는 신령스러운 영물(靈物) 또는 그 자체의 신적 존재로 그려낸다. 설화 속에서 호랑이는 주로 네 가지의 경우로 나타나는데 첫째로는 신통한 능력을 가진 영물로 나타나 주인공과 서사 전개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둘째로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인간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다. 셋째로는 인간에게 도움을 주거나, 혹은 도움을 받고 보은하는 것이다. 넷째는 욕심이 많으나 우둔하여 힘이 약한 존재에게 속아 골탕을 먹는 회화화된 모습이다.
「효자 박장철」에 등장하는 호랑이도 앞의 세 가지의 면모를 나타낸다. 어두운 밤길을 밝히고 비를 멈추는 능력을 가진 산신이면서, 인간(도승)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 박장철의 효행에 감동하여 안전하고 빨리 귀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더하여 대접한 개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기적을 만든다. 환상을 만들어 현실의 현상을 조작하는 신적 능력이다. 다른 유형의 효행 설화 「동자삼」의 결말에는 외박한 아들이 살아 돌아오고, 솥에는 아들 대신 동자삼이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현상(現象)을 죽였는데, 그것은 허상(虛像)이었고, 실재(實在)하는 실상(實像)은 살아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효자 박장철」은 효성(孝誠)에 감동한 신적 존재가 기적을 행사해주는 효행 설화의 허구적 문학성과 함께 효자 인물에 관한 지역의 실증적 역사성이 결부되어 환상성과 현실성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