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1321 |
---|---|
한자 | 天燈寺 傳說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원영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0년 6월 20일 - 「의병대장 이씨 산소 이야기」 김찬모로부터 채록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1년 6월 20일 - 「지성이면 감천」 『한국구비문학대계 1-5: 경기도 수원시·화성군편』에 수록 |
관련 지명 | 천등사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신천리 |
채록지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
성격 | 설화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있는 천등사에 빈대가 많아 중이 모두 떠나고 폐사한 절터만 남은 이야기.
[개설]
천등산은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신천리와 천등리, 독지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지도상의 위치 주소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천등리 산 7-1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1년 6월 2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1-5: 경기도 수원시·화성군편』에 「천등사(天燈寺) 전설[빈대 절터]」라는 제목으로 512~456쪽에 수록되어 있다. 1980년 6월 20일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에서 채록되었으며, 구연자는 김찬모[남, 64세], 조사자는 성기열, 최명동, 김용범 이다.
[내용]
화성시 송산면 신천리의 천등산(天燈山)에는 천등사(天燈寺)가 있었는데 이 절은 원래 현등사(懸燈寺)라고 불렸다가 이후 천등사가 되었다.
어느 시기에 국난으로 인해 오랫동안 이 절을 비우게 되었다. 국난이 평정이 되고 난 뒤 헤어졌던 중들이 절로 다시 모여들었다. 절로 돌아와 살펴보니 대웅전 대청 가운데 그 전에는 없던 기둥 하나가 서 있었다. 무엇인가 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빈대가 서로 뭉쳐서 올라가서 천장까지 닿아 기둥처럼 변한 것이었다. 그것을 본 중들이 무서워 흩어지는 바람에 절은 폐사(廢寺)가 되었다. 이 절은 그 후에도 다시 재건되지 못했고, 어느 섬으로 옮겨졌다고 전한다. 강화도의 전등사가 이 천등사가 옮긴 절이라 하는데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천등사가 한창 성황했을 적에는 절의 대웅전 보가 네 개의 칡으로 얽혀 칡대들보를 쓰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절터에는 아주 큰 주추가 남아있는데, 주추 주변은 연꽃무늬로 빙 둘러져 있다. 그 절터로 구경을 가보면 아직까지도 하얀 빈대가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모티프 분석]
「천등사 전설」은 전국적으로 넓게 퍼져 채록되는 빈대절터 유형의 광포설화이다. 빈대절터의 모티프는 한때 왕성하던 큰 절이 빈대로 인해 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절에 빈대가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중들이 절을 버리고 모두 떠나는데, 그래서 결국 절이 망하게 되고, 지금은 절터의 흔적만이 전해진다는 폐사유래담이다. 구연자는 아직도 절터에 가면 하얀 빈대가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며 천등사의 실제성과 이야기의 현실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빈대는 단지 생물학적인 작은 흡혈곤충인 빈대라기보다는 중들이 모두 놀라 도망갈 정도로, 또 절을 망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무섭고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