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1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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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水洞 堤防 傳說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원영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0년 6월 20일 - 「화산리 삼괴 이야기」 김찬모로부터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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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1년 6월 30일 - 「의병대장 이씨 산소 이야기」 『한국구비문학대계 1-5: 경기도 수원시·화성군편』에 수록 |
채록지 | 경기도 송산면 사강리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노승 |
모티프 유형 | 인신공양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용포리 용수동에서 제방을 건설할 때 중을 잡아넣었다는 전설.
[개설]
작품 속 장소 배경은 바다와 면하고 있는 용수동이지만, 송산면 일대가 간척된 후로 용포리 및 용수동 마을은 모두 육지와 면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81년 6월 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1-5: 경기도 수원시·화성군편』에 「용수동 제방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509~511쪽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 「용수동 제방 전설」은 1980년 6월 20일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에서 채록되었으며, 구연자는 김찬모[남, 64세], 조사자는 성기열, 최명동, 김용범이다.
[내용]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의 북쪽에 있는 용포리(龍浦里)의 용수동(龍水洞) 마을에는 제방이 하나 있다. 옛날에는 바닷물이 사강 지역 쪽 상류까지 올라와 그 일대가 온통 바다였다. 옛날 한 때 나라에서 바다를 막는 제방을 쌓기 위해 큰 공사를 벌였다. 그런데 이곳이 용의 목에 해당하기에 용이 자꾸 꼬리를 쳐서 마지막에 제방을 쌓은 곳이 계속 터졌다. 몇 달 동안 막고 터지고 하는 것을 반복해도 제방을 완전히 막을 수가 없었다. 이에 부역을 나온 백성들이 모두 지쳐서 한숨만 쉬고 있을 때 한 노승이 나타나 연유를 물었다. 사람들이 그 동안의 공사 상황을 알려주자 노승은 해결할 수 있는 방법 한 가지가 있다고 하였고, 인부들은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였다. 노승은 “이 제방을 막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이다. 제방을 막기 위해서는 중을 잡아넣고 막으면 용이 꼬리를 치지 못할 것이니 곧 제방을 완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일러 주었다. 이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곧 “저 중을 잡아넣어라!” 소리치며 노승을 쓰러뜨려 제방 속에 잡아넣고 둑을 막았다. 그 이 후로 이 제방은 터지지 않았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용수동 제방 전설」은 제방을 쌓는 자리가 용의 목에 해당하여 용이 꼬리를 계속 치기에 공사가 완공되지 못하고 계속 무너져 내린다는 내용에서 풍수담이며, 또 제방 축조라는 인공물에 대한 이야기로서 인문전설에 속한다. 특히 제방을 쌓을 때 중을 넣어 완공했다는 것에서는 인신공양(人身供養)의 행위, 즉 희생양(犧牲羊)의 모티프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계속되는 제방 공사 실패의 원인이 용이 꼬리를 쳐서 제방을 무너뜨리는 것이라 생각했으며, 노승은 중을 제물로 바치면 용이 더 이상 꼬리를 치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제방 건설을 성공적으로 끝내고자 중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살인 행위에 가담한다. 이렇듯 산사람을 생매장하여 제물로 바친 인신공희(人身供犧)는 제방을 계속하여 무너뜨리는 용신의 초월적 힘에 대한 굴복과 복종의 의미로 행해지는 집단의 살인 공모 행위이다. 이때 제물로 바쳐지는 중은 제방 공사와 관계가 없는 무고한 희생양으로서, 용의 목에 해당하는 곳에 제방 공사를 하여 용신에게 끼친 피해에 대한 보상의 대가이자, 그간 반복되어 온 사고와 재해로 배가된 집단의 불만과 폭력성을 해소하는데 쓰이는 도구적 존재가 된다. 한편 사람들이 문제적 상황에 당면했을 때 갑자기 나타나 자신이 피해를 당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굳이 답안을 알려준 노승의 행위는 보통 사람의 일반적 행위라 보기 어렵다. 이는 희생제물을 희생시킬 때 발생되는 양심적 가책과 책임 추궁 및 보복의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 희생양이 희생에 자원한 것이라고 과정을 합리화하고 행동을 정당화하는 집단의 논리에 의한 서술이라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