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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1306
한자 水原崔氏-
이칭/별칭 「수원최씨 이야기」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원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0년 2월 11일 - 「효자 최루백」 강성직으로부터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1년 9월 30일 - 「송충이를 깨물다」 『한국구비문학대계 1-5: 경기도 수원시·화성군편』에 수록
관련 지명 최루백 효자각 -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 지도보기
채록지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최루백
모티프 유형 효행담

[정의]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수기리에 있는 최루백 효자각 및 효암 바위와 관련한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1981년 9월 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1-5: 경기도 수원시·화성군편』에 「수원최씨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255~256쪽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 「수원최씨 이야기」는 1980년 2월 11일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에서 채록되었으며, 구연자는 강성직[남, 72세], 조사자는 성기열, 김응식, 최명동, 김용범이다.

이외에도 『경기도 화성시 구비전승 및 민속자료 조사집』6-봉담읍 편에는 124쪽과 177~178쪽, 그리고 193쪽에 각각 최루백이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가 지역 조사로 채집되어 수록되어 있다. 『화성군사』 하권 885~886쪽에도 「효자 최루백」 자료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상의 구술 자료 보다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자료 제공자는 화성군청의 최실조라고 표기되어 있다.

[내용]

수원 최씨 최상저가 사냥을 나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갔다. 15살의 어린 아들 최루백은 호환당한 아버지를 찾고자 도끼를 들고 밤중에 산으로 올라 호랑이를 찾았다. 옛말에 호랑이는 사람을 잡아먹으면 술을 마신 것처럼 취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산기슭에 오른 최루백은 아버지를 다 잡아먹은 배가 부른 호랑이가 산중 큰 바위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최루백은 아버지의 원수인 호랑이 머리를 도끼로 힘껏 내려쳤고, 호랑이는 죽었다. 최루백은 호랑이의 배를 갈라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 홍법산 서쪽에 안장하고, 산소 옆에서 여막을 짓고 삼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시묘살이를 하는 동안 부친의 혼령이 최루백의 꿈에 나타나 아들의 효심에 감탄했다고도 한다. 삼년 거상을 마친 최루백은 항아리에 묻어두었던 호랑이 고기를 꺼내 씹어 먹었다. 효자 최루백의 소문이 널리 퍼졌고, 나라에서 수원 최씨의 효자 최루백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비를 세워 주었다.

[모티프 분석]

「효자 최루백」설화의 주요한 모티프는 아버지를 잡아먹은 호랑이를 잡아 죽이는 아들의 복수이다. 아들의 나이는 기록과 구연자에 구술에 따라 15세에서 8세나 10세 정도의 어린 아이로 표현된다. 아들의 어린 나이와 도끼 하나를 든 맨몸의 상태는 호환당한 아버지를 위해 호랑이를 잡으러 가는 아들의 지극한 효성을 더욱 강조한다. 거기에 더하여 최루백은 호랑이를 죽인 뒤 뱃속에서 아버지의 유해를 꺼내와 안장하고 삼년간 시묘살이를 하고, 끝난 뒤 모아 둔 호랑이고기를 모두 씹어 먹는 효행을 보인다. 신체적 능력과 무장이 모두 부족한 어린 아들이 도끼 하나로 식인호랑이를 쉽게 처치하는 비현실적인 성공담은 효심에 감복한 하늘이 원수를 갚는 것을 허락하고 도와주는 서사적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오래 묵은 호랑이고기를 다 씹어 먹는 기행(奇行)은 아버지를 잡아먹은 원수에게 똑같이 복수하는 최루백의 비범하고도 극단적인 효심과 효행을 여실히 보여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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