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1292 |
---|---|
한자 | 南陽-墓-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원영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0년 2월 11일 - 「남양 애기묘 이야기」 강성직으로부터 채록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1년 9월 30일 - 「남양 애기묘 이야기」 『한국구비문학대계 1-5: 경기도 수원시·화성군편』에 수록 |
관련 지명 | 화성 남양리 신빈 김씨 묘역 -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 산 131-17 |
채록지 |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괘랑3리 |
성격 | 설화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괘랑3리에서 채록된 남양의 애기능 풍수 명당과 관련한 이야기.
[개설]
「남양 애기묘 이야기」는 지술(地術)에 뛰어난 사람이 부귀영화와 자손발복을 위해 좋은 산소 자리를 찾아 전국을 돌다, 경기도 남양 애기능 자리가 금계포란형(錦鷄抱卵形)임을 알고 아버지의 묘를 쓰려다가 결국 늦게 도착하여 명당을 놓치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1년 9월 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1-5: 경기도 수원시·화성군편』에 「남양 애기묘(墓)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268~269쪽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 「남양 애기묘(墓) 이야기」는 1980년 2월 11일 괘랑3리에서 채록되었으며, 구연자는 강성직[남, 72세]으로 당시 정남면 조사의 주 제보자이다. 조사자로 성기열, 김응식, 최명동, 김용범이 참여하였다.
[내용]
지술이 뛰어난 한 전라도 사람이 부자가 되고 싶고, 자손도 잘 되게 하기 위해 좋은 묘자리를 찾아 전라도와 경상도를 죄다 돌며 찾았는데, 쓸만한 자리가 없었다. 위로 계속 올라오다가 경기도 남양에 이르러 애기능 자리가 금계포란형의 명당자리임을 알게 되었다. 애기능 자리에 묘를 쓰기 위해 다시 천리 길을 걸어 고향으로 내려가 아버지의 산소를 파헤쳐 시신의 목을 잘라 궤짝에 담아 가지고서는 다시 밤낮없이 남양으로 올라왔다. 애기능 근처 능고개 밑에 당도하였더니 이미 다른 사람들이 애기능 자리에 장례를 치르고 있었고 낯선 사람의 출입을 금하는 것이었다. 애기능 자리를 포기하고 근처 산을 돌다 ‘그저 밥은 굶지 않을 만한’ 묘자리를 발견하여 아버지 시신의 머리를 묻었다. 땅에는 반드시 임자가 있는데 남의 묘 자리인지 모르고 괜히 좇으며 고생을 한 것이다.
[모티프 분석]
「남양 애기묘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 획득에 실패를 하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풍수지리적으로 조상을 모시는 산소의 자연환경적 특성이 가문과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기에 좋은 명당에 묘를 쓰고자 하였다. 보통 풍수설화 속에서 금계포란형의 명당은 닭이 계란을 품는 곳처럼 움푹하게 들어간 지형인데, 온기가 있고 찐 계란을 묻어두어도 병아리가 태어나거나 삶은 밤에서 싹이 틀 정도로 생기가 넘치는 명당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풍수 명당 관련 구비설화 중 명당 획득에 실패하는 경우는 명당 차지에 대한 욕망이 과하거나 탐욕이 지나쳐 금기를 어길 때 명당을 얻지 못하거나 잃게 되는 내용을 가진다. 「남양 애기묘 이야기」에서도 명당 획득에 눈이 먼 사람이 아버지 묘를 훼손하고 시신의 목을 자르는 패륜적 행위를 한 결과 금계포란형 명당을 잃게 되고, 굶지 않는 정도만의 복을 얻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한편 설화 속에서 남양에 있다고 나오는 애기능은 경기도 기념물인 화성 남양리 신빈 김씨 묘역으로 화성 지역에서 애기능, 또는 애기묘로 불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