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12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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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傳說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명수 |
[정의]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설화 중 특정한 증거물이 있어 사실이나 유래를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
[개설]
전설은 증거물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기에 지역의 전승자들이 진실로 믿거나 그에 준하는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며 전승하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와 관련된 증거가 유적, 지명, 인공 혹은 자연물로 남아있다. 증거물이 유래된 이유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설명적인 경우가 많고 그렇다보니 신화나 민담보다는 단순한 형태를 띄는 경우도 발견된다.
화성 지역은 전국적으로 비슷하게 생긴 자연물에 존재하는 광포전설 이외에도 지명 유래담, 인물 행적담, 자연물과 인공물을 대상으로 하는 유래담 등이 존재한다.
[광포전설]
전국적으로 연못이 있는 곳에 다수 존재하는 장자못 전설 유형의 전설은 화성시 향남읍 수직리의 「부처내전설」과 정남면 귀래리의 「방아못전설」, 양감면 용소리의 「용소리와 청룡산」 이 있다.
[지명 유래담]
지명 유래담은 말 그대로 지명의 유래를 설명하는 이야기다. 이 또한 지명 자체가 근거가 되어 왜 그런 지명이 붙었는지를 설명하는 전설이다. 우정면 화산리의 큰 느티나무 세 개가 지명이 되었다는 「삼괴의 지명유래」나 돌다리가 있어 석교리가 되었다는 「마도면 석교리의 지명유래」처럼 간단한 전설도 있으나 역사적 맥락이나 사연이 이름이 된 경우는 서사성을 가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태안읍의 능동의 지명유래에 해당하는 「능골의 유래」의 경우 정조가 사도세자의 융릉을 조성했던 역사와 맥락이 닿아있다. 정조가 융릉 앞의 마을을 가르키며 “이곳이 어디냐?‘ 물었더니 능골이라고 하였는데 주민들이 재실이라 부르지 않고 능골이라고 부른 것에 기뻐하며 능골이라는 마을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는 지명 유래담인 동시에 정조라는 인물의 행적이 담긴 인물 행적담으로 볼 수도 있다.
[인물 행적담]
인물 행적담은 지역과 연관된 유명인물의 행적을 설명하는 전설이다. 화성 지역은 정조대왕이 융릉을 조성하면서 능 조성지에 살았던 백성들이 단체로 이주했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지역을 각별하게 생각했던 정조대왕의 모습이 드러나는 인물 전설이 많이 전해진다. 융릉의 전신인 현륭원을 꾸미기 위해 심어놓은 소나무들을 갉아먹었던 송충이들을 정조대왕이 깨물어 죽였더니 송충이가 싹 없어졌다는 「송충이를 깨물다」 전설과 백성들이 송진을 얻으려 현륭원의 소나무를 꺽지 못하게 하려고 소나무마다 볶은 콩을 넣은 자루를 매달았다는 「소나무마다 콩볶음이」 와 같은 전설이 있다. 또한 융릉을 각별하게 생각했던 정조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능참봉 소재 이야기의 경우 능참봉의 업무를 꼼꼼히 관리했다는 것이 모티프가 되었을 것이다.
[자연물 유래담]
자연물 유래담은 자연물의 생김새와 이름 붙여진 유래에 대하여 설명하는 전설이다. 광포전설로 분류했던 장자못 전설 유형의 전설들도 이에 해당한다. 향남읍과 우정면에서 전해지는 「천석바위」 이야기는 유사하지만 차이가 있는 이야기다. 천석바위는 쌀가마니 천석쯤 되는 크기의 바위인데 한쪽은 주둥이 모양으로 한쪽은 평평한 엉덩이 모양을 하고있다. 바위는 입으로 재물을 빨아들여 엉덩이로 내보내는데 엉덩이 쪽에 있던 사람들이 부자가 되었다. 향남읍의 천석바위는 입쪽 마을의 재물을 빨아들여 엉덩이쪽 마을들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것에 그치지만 우정면의 설화는 피해를 봤던 마을 사람들이 바위를 부숴버려서 바위는 없어지고 부자는 가난해졌다는 결말로 끝이 난다.
신화적 성격이 있는 「쌍부산, 쌍봉산이야기」의 경우도 금강산이 각지의 명산을 불러들일 때 중턱에 박혀 보기 좋지않은 바위를 마고할미가 강원도 금강산에서부터 지고 내려와 내려놓은 것이라는 이야기이며 쌍봉산의 유래를 설명하는 이야기이다. 특히 쌍봉산이 봉이 두 개가 된 이유가 마고할미가 그 산을 들어 지고 내려올 때 썼던 멜빵의 흔적 때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