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1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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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俗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편성철 |
[정의]
경기도 화성 지역 주민들의 생활 속에서 형성되어 전승되고 있는 전통 생활양식과 문화.
[개설]
민속은 세시풍속, 일생의례 뿐만 아니라 의식주와 같은 생활양식, 환경에 적응한 기술 전승과 농업, 어업, 염엄 등의 생업활동 등 공동체가 전승해 온 생활문화, 전통문화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따라서 민속이라는 언어 속에는 포괄적이며 다양하고 한 두 문장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함의가 담겨져 있다. 화성시는 과거 남양부와 수원부에 소속된 다수의 면이 합쳐져 만들어진 도시이다. 그로 인해 도시와 농어촌, 육로와 수로가 공존하고 있어 생활양식 또한 복합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화성시의 민간신앙]
아파트 단지와 같은 집단 거주지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전통적인 형태의 촌락단위에 대한 조사이지만 여전히 가정신앙은 전승되고 있다. 가정신앙은 같은 마을이라도 집집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화성지역의 특징이 드러나는 점이 있다. 대감항아리는 본인이 모시지 않더라고 존재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다. 주로 부유한 집에서 모시고 있는 신으로, 그 안에 담긴 쌀은 가족들 외에는 나누지 않으며, 대감항아리에 올린 '대감떡'은 문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성주도 신체가 없는 집이 많은데 그렇더라도 마루에 떡을 올리고 치성을 드린다. 우정읍 원안리에서는 '산시루'라는 독특한 형태가 보고되었는데 산을 위하는 것으로 가정에서 위하는 산을 향해 백설기를 쪄낸 산시루와 청수, 초를 진설하고 치성을 드린다.
방죽이 있는 지역에서는 해다마 방죽에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수리계원이 모두 참석하는 것은 아니고 주로 수문을 관리하는 보주가 상을 차린다.
소금을 생산하던 염벗에서도 개흙을 갈거나, 가마솥에서 소금을 조릴 때 고사를 지냈다. 남양읍 원천동에서는 염벗에서 고사를 지낼 때 도깨비가 장난을 치는 것을 막기위해서 개를 잡아 올리거나, 개가 없을 때는 메밀범벅을 올렸다.
동제는 전승력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지만 아직도 마을의 중요 행사이다. 당고사, 서낭당제, 산제, 우물고사, 목신제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전해지는데 화성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명칭은 '당제'이다. 당집 건물이 없는 경우는 짚주저리 형태가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굿이 왕성하게 전승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어업의 쇠퇴, 공동체 구성원의 변화와 노인화, 기독교인의 증가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지금은 전승이 중단되거나, 관광상품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만신으로 부르는 무당을 중심으로 단골관계를 형성한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화성시의 일생의례]
1970년대 산업화,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민속 분야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출산 역시 각 가정에서 산파나 어른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지식 역시 집안 사람들을 통해 전승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병원에서 출산하게 되면서 이와 관련된 지식은 사라지는 추세이다. 또한 금줄을 치는 관행 역시 거의 사라졌다. 태를 병원에서 관리하면서 출산 후 아이의 장수를 위해 태우거나 보관하던 민속 역시 지금은 보기 힘들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종군위안부 차출 문제로 10대 조혼이 나타났었지만 혼인 적령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대한 변화가 일어나 혼인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중매혼에서 연애결혼이 확산되었으며 결혼식장을 이용하고 있다.
상례와 관련해 일제 강점기 전후반에는 반촌에서 하인들만 상여를 맸다. 그러나 신분제가 해체되면서 연반계[상여계]가 조직되거나 전문 상두꾼을 고용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상여를 메는 경우가 드물고 매장에서 화장으로 장례 방식 역시 변화하고 있다. 또한 장례 장소 역시 마을, 자택에서 장례식장으로 변화하였다.
제례는 마을공동체보다는 혈연공동체의 특징을 보여주기 때문에 화성 지역만의 특징을 찾기는 어렵지만 문중의 의례가 성균관 유도회의 제계를 기준으로 통일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또한 화성 지역의 독특한 특징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제상에 올리는 음식에 '숭어'가 많이 오른다는 점이다.
[화성시의 세시풍속]
화성 지역에서는 정월 차례상에 만두를 넣은 떡국이 올라간다. 서신면 궁평리 고잔을 비롯해 몇몇 마을에서는 메는 올리지 않고 떡국만 올리는 곳도 있다. 두레패들이 집집마다 돌며 지신밟기를 했다. 이때 걷은 비용은 마을 비용으로 사용한다. 궁평리에서는 두레패가 집에 갔을 때 대접이 부실하다고 느끼면 덕감을 할 때 "소를 먹이면 개가 되고, 개를 먹이면 쥐가 된다"라면서 덕담 대신 악담을 해주기도 헀다.
또한 대보름에는 많은 마을에서 줄다리기를 하였다. 지금도 기안동에서는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정남면 보통리의 줄다리기는 2016년 중단되었지만 용줄을 마을회관 창고에 보관하고 있으며 주민들 역시 줄다리기를 다시 시작하려고 뜻을 모으고 있다. 매송면 원리에서도 줄다리기를 크게 했었는데 근처 송라리, 야목리 주민들도 참여하는 매우 큰 놀이판이었다. 줄다리기가 끝난 후 집에 우환이 있는 사람은 줄을 끊어다 지붕에 올려두거나 삶은 물을 마셨다.
2월 초하루에는 본인의 나이만큼 송편이나 인절미를 먹는 '나이떡'먹기와 새벽에 물긷기 등을 했으며 동네에 따라 영등할미를 모셨다. 농촌에서는 본격적인 농사일이 시작되기에 머슴날이라 하여 머슴들을 대접하고, 머슴들은 이제 일이 시작된다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단오에는 씨름과 그네타기를 했다. 씨름판은 주로 남양에서 크게 벌어졌으며 그네는 남녀 모두 탈 수 있었다.
칠월에는 농사가 끝나고 호미씻이를 했는데 칠석 때 노는 곳과 백중 때 노는 곳이 혼재되어 있다.
8월 추석 봉담읍 세곡리에서는 팔탄면 사천리 사람들과 석전을 하였는데, 점심을 먹고 건달산에 올라가 돌을 던졌다고 한다. 정남면 오일리와 동탄면 석우리 능안[현 동탄1동], 팔탄면 요당리에서는 추석 때 수수잎으로 거북이를 만들어 거북놀이를 했다.
동지에는 팥죽을 먹는데 전염병으로 죽은 이가 있는 집안에서는 팥죽을 먹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