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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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沙江監理敎會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시장길 10[사강리 548-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은선 |
설립 시기/일시 | 1902년 10월 30일 - 사강감리교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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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46년 4월 - 사강감리교회 이전 |
이전 시기/일시 | 1954년 4월 6일 - 사강감리교회 이전 |
현 소재지 | 사강감리교회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시장길 10[사강리 548-1] |
성격 | 교회 |
전화 | 031-357-0888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설립 목적]
사강감리교회는 남양감리교회에 속해있던 홍승하와 홍승문이 경다리 일대에 복음을 전파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육성하고자 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사강감리교회는 남양감리교회의 속장인 홍승하와 홍승문이 복음을 전파하고 다니는 과정에서 사강리의 한 마을인 경다리에 복음을 전하여 생겨난 예배공동체로부터 시작된 경다리교회가 그 기원이 되어 1902년 10월 30일 설립되었다. 사강감리교회는 송산면 일대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교회로서 1900년 9월부터 예배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마산포의 포막동교회에서는 3-4㎞ 떨어져 있었다. 초기 사강감리교회는 남양감리교회의 목회자가 순회하면서 말씀을 전하였으므로, 이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할 사역자로 1906년 성서매서인인 곽응환이 파송되었다. 1908년에는 김착실 전도부인이 부임하여 복음을 전파하였다. 김광식이 남양감리교회의 사역자로 일하던 1911년에는 남양감리교회의 지교회로 경다리[현 사강2리, 정더리]에 4칸의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3·1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3월 28일 사강장터에서 천여명이 모여 과격한 만세시위를 하던 중에 순사부장인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돌에 맞아 죽는 사태가 발생하였는데,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 경찰과 군인들이 방화를 하여 사강리의 82호 가구가 불에 타고 교회 건물도 전소되었다. 1919년 8월 감리교 선교부가 내놓은 구제금 1,500원의 지원을 받아 사강감리교회는 10칸으로 복구되었는데, 김봉학이 소유한 정더리의 정미소 자리에 재건되었다. 1924년 9월에는 남양감리교회에서 분구역되어 김교철 전도사가 초대담임자로 부임하였다.
1946년 4월 사강시장에 위치한 정영덕 소유의 양조장 목조건물 63평을 매입하여 교회를 이전하였다. 1950년 6·25 전쟁 과정에서 최학렬 전도사가 순교하였다. 1953년 부임한 장태명 목사가 1954년 4월 6일 현재 교회의 위치에 대지 249평의 토지를 매입하고 석조건물 60평을 건축하여 교회를 이전하였다. 1976년에 부임한 이영종 목사가 1979년에 같은 위치에 327평의 건축을 시작했는데, 1980년 1월 김도순 목사가 부임하여 1982년 11월 25일 성전봉헌예배를 드렸고, 1995년 11월 16일 1층과 2층에 각각 50평 총 100평을 증축하여 교회총면적은 427평이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사강감리교회는 장년회, 청년회, 여선교회를 조직하여 봉사와 전도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열매맺는교회를 비롯한 15개 교회와 기관을 후원하고 있으며 해외에서는 에티오피아에 선교사를 파송한 것을 비롯하여 11명의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있다.
[현황]
사강감리교회는 담임목사 1명을 비롯하여 부목사 3명, 수련목회자 및 심방전도사 각 2명, 장로 14명 등이 봉사하고 있다. 영아부와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중등부와 고등부, 청년부의 교회학교를 조직하여 후세대를 양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외국인 예배를 위한 외사부가 있다.
[의의와 평가]
사강감리교회는 현재 송산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천등교회, 화랑교회, 수산교회, 향남교회를 개쳑한 화성 지역의 유서 깊은 교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