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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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共生鹽田 |
영어공식명칭 | Gongsang Salt pond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매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원석 |
최초 설립지 | 공생염전 -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매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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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공생염전 -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매화리 |
성격 | 염전 |
면적 | 476,003㎦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매화리에 있는 6·25전쟁 실향민들이 조성한 염전.
[개설]
공생염전은 남양만 바다에 880m의 제방을 쌓아 간척하여 만들어진 염전으로, 6·25전쟁으로 피난 온 강원도 철원, 평강 등지의 피난민들이 조성하였다. 초기 피난민들은 자치 조합인 공생 조합을 결성하여 염전을 운영하였는데, 6명이 소금 창고 1동을 공동 소유하여 작업하는 방식이었다. 염전에는 '공생염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공평하게 소금판을 분배하고 함께 살아가자는 의미였다.
[건립 경위]
공생염전 및 공생조합 제방은 국가에서 피난민들의 정착사업으로 실시한 것으로, 피난민들이 당국의 염전 허가를 얻어 1953년 7월부터 약 7년간 조성하였다. 조성 초기 약 2년 동안 덕적도에서 돌을 날라 매화리 앞을 가로지르는 길이 약 880m 높이 2~3m의 제방 둑 및 저수지 둑을 완성하였고, 1956년부터 4년에 걸쳐 소금판 12만평, 저수지 9만평, 유휴지 6만평을 확보하였다. 1962년에는 염전 바로 뒤 언덕 위에 4동의 흙벽돌 연립가옥을 세워 피난민들의 생활 터전을 조성하였는데, 153가구 600명이 염전에서 일하면서 살았다. 이렇게 염전과 생활 터전을 조성하는 데는 유엔민사원조처의 협조와 각 종교 단체의 양곡 원조가 큰 역할을 하였다.
[변천]
공생염전은 공생조합의 1세대들이 조성한 이후, 현재는 2세대들이 염전을 소유하거나 생산에 참여하고 있지만, 현재 염전 상당수는 외지인에게 팔려 염전 생산이 임대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소금 일은 보통 남성들이 했지만, 소금 생산이 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일꾼 고용의 어려움과 비싼 인건비 때문에 2000년부터는 여성이 소금 생산에 참여하여 지금은 부부가 같이 일을 많이 하고 있다. 공생염전의 바닥은 전라도와 달리 장판을 사용하지 않고 타일을 사용하는데, 과거에는 옹기판인 '깸파리'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현재 화성의 공생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은 소금 품질 검사 기관과 한국어촌어항협회 두 군데에서 검사를 받아 판매되고 있다.
[구성]
공생조합은 12호의 염전을 만들었는데, 각 호마다 공동 소유자가 6명이고 1인당 2,000평을 분배 받아서 각 호당 12,000평의 면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공생염전은 약 144,000평의 면적에 공동 소유자는 7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증발지, 결정지, 소금창고 등이 조성되어야 하는데, 보통 12,000평 규모가 필요했다. 따라서 각 호를 공동 소유한 6명은 공생할 수 밖에 없었으며, 각 호마다 대표자를 선출하여 운영하였다.
[현황]
공생염전의 1년 소금 생산량은 보통 20㎏ 포대 7,000~8,000개 정도이나, 강수량이 적고 날씨가 좋은 해에는 10,000 포대까지 생산하기도 한다. 소금 가격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일반적으로 20㎏에 7,000~10,000원 정도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으며 농협 또는 개인 거래처 등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한편, 공생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소금꽃 피는 마을'이라는 상품명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염밭에서 서식하는 자연산 함초도 식품으로 판매한다. 최근에는 체험장으로 조성되면서 초등학생들의 사전 예약을 받아, 소금 채취 과정과 염생식물에 대한 이해로 나누어 체험을 진행하기도 한다.